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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5

숫자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 숫자를 이용하는 것은 결국, 인간!

제가 초기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들어서,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았던 조언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

무엇이든 정량화하고, 순위를 매기고, 척도를 만들고, 범주를 나눔으로써 소통이 쉬워지고, 애매모호한 것이 명확해지고, 취약점이 드러나고, 데이터에 기반한 정당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 맹목적인 "수(number)"에 대한 권위 부여는, 숫자가 빠진 의사 소통에 대해서는 객관적이지 않고, 비과학적이며,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게 만듭니다. 통계학자인 폴 굿윈의 《숫자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숫자와 관련된 우리의 실수를 짚어줍니다.

숫자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 데이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폴 굿윈 지음. 신솔잎 번역
숫자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 데이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폴 굿윈 지음. 신솔잎 번역

전반부에서는 숫자가 잘못 쓰이거나 지나치게 강조되어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에 대해 다룹니다. 숫자, 지표, 측정치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이것을 발표하고, 공유하고, 읽고, 해석하고, 의사결정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에서 왜곡과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정말 많은 역사적 에피소드와 현실 사례들이 나옵니다. 후반부에서는 정확하고 정직한 숫자가 제시되어도, 그것을 놓치고, 외면하고, 무시하게 되는 이유와 위험에 대해 다룹니다. 

1장에서는 순위에 대해 다룹니다. 입학, 졸업, 입사, 성과 평가, 입찰, 선거, 오디션, 베스트셀러 선정, 올해의 배우 등 우리는 순위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는 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과연 이것을 순위로 매기는 것이 타당한가? 라는 의문이 생기는 경우도 매우 많습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케네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였습니다. 세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대안이 있을 때, 투표권을 가진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선호 순위를 잘 반영하는 투표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특히 여러 가지 지표를 종합한 종합 순위를 매기고, 그것을 정말 중대한 곳에 활용하는 것의 문제점이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 종합 순위 대신에 왜곡의 가능성이 적은 개별 척도(hot indicator)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2장에서는 프록시 지표에 대해 다룹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울 때, 대상의 속성을 반영할 것으로 보이는 간접적인 측정치를 프록시 지표라고 합니다. 프록시 자체의 타당성도 문제이지만, 지표 자체가 목표가 되어 부정적인 결과를 나을 수 있다는 것이 굿하트의 법칙(Goodhart's law)입니다. 폭스바겐은 배기가스 배출 기준이라는 지표만을 만족시키기 위해, 극단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는 부정까지 저지르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프록시 지표로서 오랫동안 확고한 지위를 누려온 국내 총생산(GDP), 지능지수(IQ)에 대한 문제점, 오용된 사례들도 나옵니다.

3장에서는 대표성(representativeness) 문제를 다룹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평균"이라는 대표값은 사실 집단 구성원 누구도 대변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평균값을 근거로 집단의 특성을 간편하게 특징짓고, 유형화(stereotype)하는 것의 위험을 이야기합니다. 2018년에 보았던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전투기 좌석을 설계할 때, 모든 조종사들의 평균 체형을 고려하여 만든 결과, 어떤 조종사에게도 맞지 않은 좌석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쨌든, 복잡하고 다면적이고, 개별적인 개체들을 단 하나의 대표값으로 단순화해서 의사소통할 때에는 항상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평균의 종말: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평균의 종말

4장에서는 범주화(categorization)와 경계(border, boundary)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논문을 쓸 때, 연구자들은 통계적인 유의 수준(significant level)으로 피셔가 제안한 0.01 또는 0.05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영가설이 참일 때, 이런 실험 결과가 나올 확률은 5%나 1%보다 낮으니, 영가설을 기각한다라는 논리를 사용합니다. 저도 논문 쓸 때, 유의미한 극단적인 확률값이 나오면, "별이 떴다!"라고 하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5%, 1%라는 기준은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임의의 경계선 안에 들어가기 위해 합법적이거나 편법적인 방법으로 데이터를 조작하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89.5로 B 학점을 받은 사람과 90점으로 A학점을 받은 사람은 완전히 다른 범주로 분류되고 큰 차이로 지각되지만, 99점을 받은 사람과 90점으로 A를 받은 사람은 같은 범주로 묶이게 됩니다.

5장에서는 특이하게 라이프트래커, 라이프로깅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마트워치와 같이 24시간 나와 함께 하는 디바이스의 등장으로 나의 많은 신체 활동과 상태를 숫자로 기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숫자들이 나의 다채롭고 복잡한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는 여론 조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론 조사는 원칙적으로 무작위 샘플링을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질문 상황, 답변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염과 왜곡이 생깁니다. 보통은 조사 기관에서 밝히는 오차 범위보다 훨씬 큰 오차 범위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에서는 사소하게 발생할 수 변화에 대해 과도한 서사를 붙여서 여론을 왜곡하거나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언더독 효과, 밴드왜건 효과, 헤딩(herding) 효과 등 여론 조사 결과를 왜곡시킬 수 있는 심리사회적인 기제들도 많습니다.

7장은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행복도, 삶의 질, 고통의 정도 등의 지표에 대해 다룹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부터 후순위에 있는 나라까지 발표되면, 각 나라 정부와 정치인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순위를 해석하고, 정책을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응답자들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는 있었던 것일까요? 순간적인 다른 변수에 의해 응답이 매우 달라질 수도 있는 불안정하고 불분명한 것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대어, 소수 세째 자리로 갈리는 행복도 순위는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오픈AI의 이사진들이 지향했었다는 (피터 싱어의) 효율적 이타주의의 이야기도 잠깐 나옵니다.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과 같은 이타주의를 실행하는 데에 있어서도 정량화된 지표에 기반해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가 큰 곳에 기부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효율성을 타당하게 어떻게 정량화하느냐 문제가 제기됩니다.

8장은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고 있는, 사전 확률에 대한 고려를 이야기합니다. 즉,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 이야기입니다. 검사의 오류(presecutor's fallacy) 이야기를 보니, 잘못된 확률 판단으로 인해 유무죄를 판단하는 형사법정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판결이 나올 수도 있더군요. 코로나19 백신의 효과, 음주 운전자의 식별, 범죄 용의자나 테러리스트의 식별, 거짓말 탐지기의 효과와 같이 매우 민감하고, 치명적인 곳에서 기저 확률을 고려하지 않은 확률 판단에 오류가 생길 경우, 그 여파는 심각할 수 있습니다.

9장에서는 정확한 숫자가 제시되어도 우리의 기존 신념에 반하는 경우, 왜 우리는 그것을 종종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지를 다룹니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사전 확률을 0 또는 1로 놓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어도, 우리의 믿음을 바꿀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교육 수준이 높거나 과학적인 사고를 훈련받은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되어 노벨병(Nobel disease)라고도 불립니다. 또, 역화 효과(backfire effect)는 기존 믿음을 반박하는 사실(예: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없었다!)이 나와도, 기존 믿음이 오히려 더 견고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때로는 집단이 객관적인 정보를 무시하고, 집단 사고(group thinking)에 빠질 경우,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 피그스만 침공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에서 보듯이 극단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부산 엑스포 유치에 대한 과장된 기대와 유치 실패의 원인을 집단사고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10장에서는 과장된 공포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 가지 지표들은 현대 사회가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것은 낮은 확률이지만 극적으로 보이는 비행기 사고, 끔찍한 흉악 범죄들입니다. 공포를 조장해 이득을 보는 세력들과, 부정적인 뉴스에 더 주의를 쏟게 되는 우리의 뇌가 함께 작용하여 세상이 점점 더 험악해지고, 미래는 더 어둡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공포 마케팅은 언론, 기업, 종교, 선동적인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여, 때로는 잘못된 투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정확한 숫자와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메시지가 나오게 된 동기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11장에서는 통계적 사고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의심스런 통계치나 숫자를 대할 때에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판단(시스템 1 사고)과 함께, 느리고 깊게 생각해보는 시스템 2 사고를 병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보가 한결같이 편향되어 있어도, 일관성이 있고, 명쾌하게 일치할 때 우리는 타당하다는 착각(타당성 착각, illusion of validity)에 빠진다고 합니다.

어쩌다보니 책의 내용의 주요 부분을 인용 부호 없이 거의 인용, 요약해버렸습니다. 그만큼 곱씹어보고 싶은 내용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 책은 서점에서 "자연과학", 수학 관련 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숫자가 많이 나오지 않고도 숫자 이야기를 쉽게 전해줍니다. 그리고 사실, 숫자를 만들고, 가공하고, 조작하고, 읽어들이고, 해석하고, 공유하고, 적용하는 인간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옵니다. 그런 면에서 훌륭한 심리학 서적입니다. 2023년을 시작할 때 서강대학교 하영원 교수의《결정하는 뇌》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수많은 의사 결정(decision making)을 해야 하는 우리 인간은, 매우 많은 실수를 하고, 합리적이지 않고, 편향에 휘둘린 결정을 합니다.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숫자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제한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또 드러난 숫자 뒤에 숨겨진 숫자와 의도, 의미를 파악하려고 더 노력하면, 조금은 더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결정하는 뇌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결정하는 뇌

2023-11-24

자이언트 임팩트, Those were the good old days!

KBS 박종훈 경제 기자가 쓴 《자이언트 임팩트》를 읽어보았습니다. 원래 자이언트 임팩트 또는 테이아 가설로 불리우는 이 용어는, 45억년 전에 지구가 화성만한 크기의 테이아와 충돌하여 달이 탄생했다는 유력한 과학적 가설입니다. 저자는 그것에 견줄만한 세계 경제의 커다란 변화와 충격 4가지를 거론하며,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의한 글로벌 분업 시대, 초저금리 시대,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던 시대, 고성장 시대는 이제 지나간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과거 30~40년의 경제 작동 방식을, 앞으로도 비슷하게 적용하여 예측을 한다면 틀린 예측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자이언트 임팩트. 박종훈 지음
자이언트 임팩트. 박종훈 지음.

그 네 가지 자이언트 임팩트는 인플레이션, 금리, 전쟁, 에너지입니다. 경제학적 기본 지식이 없는 저같은 사람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설명해놓았습니다. 책의 내용을 여기에 요약하는 것은 저의 능력 밖의 일이라서, 각 항목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적어봤습니다.

첫 번째는 '인플레이션'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특별히 물가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 장기적인 저물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큰 이유로, 미국이 움켜쥔 세계의 패권에 따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원활하게 이루어진 분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갑자기 찾아온 공급망의 문제, 그리고 피부로 느껴지는 고물가에 우리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계속 올리고, 우리 나라는 정부가 물가를 인위적으로라도 잡으려고, 가히 관치 경제라고 할 만큼 깊게 개입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플레이션이 과연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여러 가지 환경의 변화로 이제 더 이상 물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좋던 시절(the good old days)은 다 지난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는 물건의 값인 물가에 이어, 돈의 값인 '금리'가 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이례적으로 저금리 현상이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미국 연준이 빅스텝, 자이언트 스텝이라 불리는 금리 인상을 연속해서 단행하고, 이제 언제 기준 금리를 동결할 것인지가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과거처럼 저금리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높은 저축률에서 비롯되었던 풍부한 자금이 줄어들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금리를 다시 올리는 것을 검토해야 합니다. 게다가 고령화로 인한 자금 시장의 변화,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리스크가 저금리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 뉴스를 볼 때마다, 금리와 다른 경제 변수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저같은 경제학 맹에게는 항상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면, 금리와 채권 가격의 관계 같은 것 말이죠. 어쨌든 그동안 저금리 현상에 잘 적응하여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이용한 과거의 투자 전략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되어간다고 할 수 있겠네요.

세 번째는 바로 전쟁입니다. 미국이라는 원톱 초강대국 체제의 세계 패권이 이제 미국과 중국이라는 투톱으로 바뀌고, 거기에 유럽, 동아시아의 신흥국, 에너지 패권을 쥔 러시아, 중동 나라 등이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직접적인 무력 도발인 전쟁, 또는 패권 전쟁, 공급망 전쟁, 기술 전쟁, 국지 전쟁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말로 침공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었지요. 게다가 그 전쟁이 이렇게 오랫동안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계속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또는 하마스)간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은 당사국 국민들에게는 당연히 말할 수 없는 고통이고, 그 여파는 에너지, 식량, 인플레이션 등으로 전세계에 미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쟁을 대하는 나라들의 이해관계도 단순하지가 않아서, 이제 나라들도 각자도생, 개인들도 각자도생의 시대가 오며, 예측 가능성은 낮아지고, 변동성은 매우 커지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로 언급된 것이지만, 결코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에너지'입니다. 한 때, 원유 고갈에 대한 대안으로 셰일 가스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셰일 가스가 발견되면서 미국은, 중동이나 러시아와 같은 원유 생산국에 대한 의존과 간섭을 줄이려고 했었죠. 그러나, 셰일 가스가 여러 이유로, 미국이 바라는 대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의 역할을 잘 못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독재자라고 비난했던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를 찾아가 원유 생산을 늘려달라고 싹싹 빌었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사우디와 중동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이란은 미국과 핵 합의 복원을 하려고 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전쟁과 핵무기 기술 확보 등의 여러 가지 변수가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유럽은 어떻습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에 크게 의존했던 천연가스 공급이 어려워지자, 겨울 난방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또,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려고 해도, 발전에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은 대부분 중국이 키를 쥐고 있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풍부한 화석 연료 에너지를 활용해서, 고성장을 이룩했던 시대는 또 하나의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불확실성과 변화만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미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시대에 변화를 읽는 거시적인 안목을 갖추고, 거기에 국가, 사회, 개인이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십시오.

거대한 충격 이후의 세계: 알아두면 반드시 무기가 되는 맥락의 경제학. 서영민 지음
거대한 충격 이후의 세계: 알아두면 반드시 무기가 되는 맥락의 경제학. 서영민 지음

이전에는 서영민 기자의 《거대한 충격 이후의 세계》라는 책을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충격 이후 급하게 변화하는 세계 경제를 변화시키는 여러 가지 현상과 요인들, 특히 반도체 문제, 인구와 기후 위기, 빈곤의 문제 등을 포함해 깊게 파헤치는 책이었습니다. 기자란 모름지기 발생하는 "피상적인 사건에 숨겨져 있는 고구마 줄기와도 같은 원인들을 깊게 파헤쳐 분석해주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상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도 같이 보면, 거시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023-11-11

스마트폰에 중독된 현대인을 위한 책, 호모 아딕투스

호모 아딕투스: 알고리즘을 설계한 신인류의 탄생. 김병규 지음.

김병규 교수가 쓴 《호모 아딕투스》를 읽어보았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새로운 경제 메카니즘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물건 자체가 귀하던 제품 경제의 시대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관심 경제의 시대, 이제는 알고리즘으로 사람들의 시간을 하염없이 붙잡아 둘 수 있는 중독 경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중독 대상은, 고통이 따르는 지출을 동반하거나, 일상적으로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심각성이 좀 덜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접하는 쇼핑, 뉴스, 게임, 쇼셜 미디어, 유튜브 등은 많은 경우 공짜이기도 하고, 매우 적은 노력으로 손 안에서 바로 실행 가능한 점이 다르다고 합니다. 게다가 내 손 안의 현금이 줄어드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 카드 결제, 앱 안에서의 포인트 사용 방식으로 지출을 하면, 소비할 때 느껴지는 고통이 훨씬 덜하다고 합니다. 많은 데이터를 가진 빅테크 기업들이 정교하게 짜놓은 알고리즘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사실은 보여지는 것을 계속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거대 기업들의 정교한 낚시에 걸려 점점 대상에 중독되어 가면서도,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했다는 착각에 빠져 살게 됩니다.

저 자신을 한 번 돌아봅니다. 나는 무슨 중독에 빠져있을까? 다행히도, 저는 게임이나 쇼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때 뉴스에 강박적으로 빠져 살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중요한 일에 몰입하거나, 진지한 독서를 못 하게 하는 가장 큰 훼방꾼은 뉴스였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확인 가능하고, 끝없이 업데이트되고,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식이 가득한 뉴스를 계속 확인하게 되는 상태가 계속 되었습니다. 물론, 뉴스를 전혀 모르고, 현 사회를 살아가기는 힘들지만, 나에게 아무런 연관도 없고, 쓸데도 없는 "최신" 뉴스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은 분명히 좋지 않았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요"라는 간헐적 보상도 있지만, 올라오는 소식의 "최신성"이 더 중독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독서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다른 공부를 하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내내, 포털 사이트를 뒤적거리며 최신 뉴스를 확인하고 나면, 너무 허무했습니다.

책에서는 중독 경제 메카니즘을 잘 이해하고, 거대 기술 기업들이 주도하는 중독 경제 세상에서, 소규모 비즈니스 주체가 살아남는 전략을 몇 가지 제시합니다. 마이크로 어딕션(micro-addiction) 전략은 비교적 작은 스케일로 중독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런 예로 10대들이 좋아하는 틱톡,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소셜 미디어 레딧, 고도의 큐레이팅이 들어간 쇼핑몰 29CM 등의 사례가 나옵니다. 두 번째는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딕션 프리(addiction free)전략입니다. 이 전략을 적용한 비즈니스 사례로 결심을 실행하게 도와주는 챌린저스, 광고 없이 고품질의 글이 유통되는 플랫폼 미디엄 등을 제시합니다. 그 외에도 책을 읽어보면, 더 세분화된 비즈니스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후반부에서는, 중독 경제 시대에 중독에 빠지지 않고, 현명하게 개인이 살아가는 방법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광고를 꺼놓는다든지, 스마트폰의 알람을 꺼놓는다든지, 소비를 미루는 습관을 들이는 것 등을 제시합니다. 나아가, 중독 경제 시대를 이끌어가는 데에 필요한 인재상과 역량을 제시합니다.

책에는, 갤럽이 시행한 한 관찰과 행동 분석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방해를 받지 않고 한 가지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이 평균 3분 5초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소개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업무를 방해받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23분 15초가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 뉴포트는 멀티태스팅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진정한 생산성은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딥 워크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어떤 것에 집착하게 되는 것을 중독이라고 한다면, 의도한 일에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딥 워크: 강력한 몰입, 최고의 성과. 칼 뉴포트 지음. 김대훈 옮김.

중독 경제 메카니즘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이고, 전략입니다. 그 안에서 비즈니스 주체로서, 또는 일의 주체인 개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 책과 함께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2023-10-19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림이 있는 동화책, 《책과 노니는 집》

책과 노니는 집. 이영서 글. 김동성 그림
책과 노니는 집. 이영서 글. 김동성 그림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읽어보고, 내용과 단어가 너무 어렵다고 하여, 도움을 주기 위해 저도 읽어보았습니다. 제9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라니 어떤 작품일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야기의 배경은 조선 후기 천주학이 학문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에 서울입니다. 주인공 장이는 책을 필사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아버지와 살고 있는 어린 소년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천주학 책을 필사했다는 이유로 죽도록 맞아, 소년은 세상에 홀로 남겨질 것을 두려워합니다.

죄 없는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다니...... 모진 놈들......

아버지에게 일감을 주었던 책방 주인 최 서쾌가 아버지가 죽기 전에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보편적인 사람의 상식과 정서에서 아버지는 죄 없는 사람이었고, 한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 탄식하는 것이지요. 그 시대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국가가 보았을 때 죄가 됩니다. 그러나 통치자가 만들어놓은 합법의 테두리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설사, 그 시대 기준으로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죽을만큼 맞는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죄가 있다고 신체적인 형벌을 주는 일, 그리고 사람의 목숨까지 국가가 빼앗아가는 일이, 현대 사회에서는 이제 많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 걸까요.

국가의 정책, 지배자의 통치 방향과 다르다는 이유로 조선 말기에 천주학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되었다고 의심받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학을 접한 사람들은 더 많아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엄격하게 계급이 구분되어 날 때부터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구분되는 신분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를 따라가지 못한 국가는 가혹한 탄압을 행합니다. 왕조 시대와 식민지 시대를 거쳐서 민주 공화국이 되고, 절대적인 통치자, 왕에 의한 지배에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 사회가 된 우리 나라! 정말 많이 진보했습니다. 그러나, 그 법이 정의, 평등, 인권, 사상의 자유 등 인간의 이상을 반영하지 못한 상태에서, 법 통치자에 의해 잘못 휘둘러지는 경우는 없는지도 생각해봅니다. 

혼자였던 장이를 도와주는 사람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최 서쾌의 도움으로 필사한 책 배달을 하게 된 소년, 장이. 이번에는 동네 불량배인 허궁제비에게 큰 괴롭힘을 당하고 난처한 처지에 빠집니다. 가족도, 도와줄 사람도 없는 장이는 혼자서 끙끙대며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장이는 고립무원의 약자가 아니었습니다! 가족이 없는 장이에게 일터를 주었던 최 서쾌, 도리원에서 만난 낙심이, 청지기 아저씨, 미적 아씨, 지물포 주인 오씨 등이 모두 합심하여 도움을 주었습니다! 최 서쾌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감당할 수 없거든 도움을 청하란 얘기다....... 휴우.

도움을 제공한 장이

관아에서 다시 천주학 관련자를 대대적으로 색출하여 잡아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번에는 그동안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장이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홍 교리에게 장이가 큰 도움을 제공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외로운 현대인들은 각자 도생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장이는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줄 수 있는 행복을 가졌습니다. 국가 폭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거대한 과거 왕조 시대로 결코 돌아가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어려울 때 서로 도움을 주고 외면하지 않는 것이 조상들의 보편적인 정서였다면, 현대인으로서 그런 옛날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마무리

소년 장이의 성장 소설일 수도 있고, 조선 후기의 역사 소설일 수도 있습니다. 장이라는 순진한 어린이의 시선을 따라 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담하게 그려지면서, 책읽기를 권장하는 어린이 문학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성격을 다 갖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과함이 없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책을 많이 보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역사가 너무 도드라지지도 않으며,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지도 않습니다. 이야기는 알차게 꽉 차 있지만, 이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각자의 생각과 느낌, 상상으로 채울 수 있는 여백이 아주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와 한 몸이 된 듯한, 아름답고 따스한 삽화가 없었다면, 책읽기의 즐거움이 반감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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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4

완벽해 보이는 가정의 균열, 《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작가의 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작가의 마당이 있는 집


현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나는 소설을 든다. 소설에 빠져들며, 현실의 아픔을 잠깐 잊고 싶어서. 이번에는 오랜만에 읽은 스릴러 소설. 운명이 다른 두 여자의 가정이 무너져가는 이야기가 짧은 며칠 사이에 극적으로 전개되며 쉽게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2023년 나의 현재의 암담한 상황과 소설 속의 상황이 자꾸 오버랩 되면서 읽는 동안 계속 깊은 계곡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추리 소설이라고 하면 보통은 사실이 상당히 나중에 밝혀지는 반면, 이 작품은 중간중간에 두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사실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게 되므로 추리물은 아니다. 그러나 끝까지 결말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게 만들고 긴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써본 작가의 소설적 재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완벽해 보이는 의사 남편을 둔 김주란의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미묘한 균열을 세밀하게 그려지고, 아마 그런 점에서 공감이 가는 부부들도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남편은 아내를 자상하게 보호해주는 것 같고, 아내는 그의 틀 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김주란이 문제 제기를 할 때마다 그냥 미안하다, 그만하자로 대충 마무리해버리는 남편의 모습.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의문을 갖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아내, 김주란의 모습. 그냥 참고 넘기면 그냥 계속 평온할 지도 모를 관계에서 조그마한 균열이 파국을 향해 급하게 달려간다. 완벽한 가정이란 이 세상에 없는 것인가? 괜찮아 보이는 가정, 그리고 처음부터 문제가 있어 보이는 두 개의 가정의 모습을 보고, 이 세상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가족의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이상적인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같은 제목을 가진 드라마로도 작품화되었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다. 김진영 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저, 엘릭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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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8

나의 과학적 지식 수준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책표지

나는 수학이나 과학을 싫어하거나 크게 겁내지는 않았다. 내가 궁금해하는 문제에 대해 과학적 사고를 하는 법과 과학적 원리를 모르는 내가 답답해, 대학교에서도 공대의 음향학 수업을 듣거나, 다른 과에 가서 미적분학, 미분방정식 등 수학,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을 찾아들었다. 최근 몇 년을 돌이켜봐도, 미적분의 힘이나, 뇌과학의 모든 역사,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와 같은 교양 과학 서적들을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유시민 작가의 책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보면서, 한참을 반성했다. 정말 과학적인 기초 사실들에 대해 내가 이렇게 대충대충, 건성으로 들어만 본 것을 아는 체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표적인 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생물이 진화한다는 진화론에 대해 나는 너무 무지했었다. 생존에 유리한 자연 선택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유전자에 어떻게 반영된다는 것인지 너무 몰랐었다. 

우주의 탄생, 그리고 그것이 현재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주기율표에 나오는 원소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원자핵과 전자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앞으로 우주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이제야 조금 손에 잡힐 듯이 이해하게 되었다.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의 과학적 발견들을 탐색하며,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인문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하나하나가 대충대충 넘어가지 않았다. 스스로 "거만한 바보"를 겨우 벗어난 "문과" 남자라고 칭한 저자는 훌륭한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쓴 수많은 과학 교양서들의 도움을 받아, 다른 어떤 커뮤니케이터보다도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참고했던 책들은 그대로,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훌륭한 과학 교양서들이다. 이 목록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었다. 코스모스, 원더풀 사이언스,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 이기적 유전자, 눈먼 시계공,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엔드 오브 타임, 원소의 왕국, 사회생물학 대논쟁, 통섭: 지식의 대통합, 생명이란 무엇인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불확실성의 시대, 김상욱의 양자 공부, 세상의 모든 수학,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내가 누구인지 뉴턴에게 물었다, 어느 수학자의 변명 등 그 중에 몇 가지만 나열해도 풍부한 추가 읽을 거리가 생긴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나열할 수 없이 많지만, 아무래도 마지막 장에 나온 수학에 관해서 영국 수학자 하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다. 수학과에 가면 도대체 논문을 어떻게 쓸까? 수학과에 가는 그 많은 사람들이 수학적인 발견을 하나씩 해내어 논문을 쓰는 걸까? 하디는 산술, 대수학, 유클리드기하학, 미적분학, 공학, 물리학, 경제학, 사회과학 전공자가 배우는 수학은 "하찮은 수학"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런 수학은 세상에 유용하게 쓰인다. 그런데 현대의 기하학과 대수론, 정수론, 집합론,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은 아름다운 "진정한 수학"이지만, 세상에 쓸모가 없다고 하였다. 물론 이런 이분법은 맞지 않다. 상대성 이론이 없었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내비게이션만 해도 엄청난 오차 때문에 전혀 쓸모가 없게 된다. 유시민 작가는 다른 과학과는 다르게, 소위 "진정한 수학"을 하는 수학자들은 "인간계"가 아닌 "신계"에 속한 사람들 같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천재 수학자 가우스를 예로 들면서. 

학교 다닐 때, 수학 좀 잘 한다는 사람들은 수학에 많이 의존하는 과학을 하면 잘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수학을 잘 한다는 것이, 새로운 "신계"의 수학적 발견을 해낸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인가 보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몇몇 과학자들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충분히 밑줄 치고, 메모하면서 보지 못해 아쉽다. 책 반납일을 단 며칠 앞두고 펼치기 시작해서 다 볼 수 있을까 걱정하였다. 하지만 너무 속도감있고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어서, 그건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인문학과 과학이 만나서 어떻게 세상의 문제들을 설명해가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에서 여정을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돌베개]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돌베개,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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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2

기존 의학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우리 몸이 세계라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글

고려대학교 김승섭 교수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SF작가 김초엽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보건학자이고 전공이 역학(epidemiology)라고 합니다. 역학이 무엇인지는 최근에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으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알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의학이 개인의 몸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공중보건학, 그 중에서 역학은 개인의 몸과 질병을 둘러싼 주변 환경을 좀 더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학문인 것 같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여성들이 왜 오히려 스트레스 수준이 더 올라갔을까요? 적절한 실내 온도는 21도인가요? 이런 질문에서 시작하여, 상시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노출되는 건강의 위협, 혈액형과 인종이라는 가짜 과학이 어떻게 차별과 지배의 도구로 쓰였는지, 담배 회사에서 만든 연기 없는 세상(Smoke-Free World) 재단 이야기 등 정말 흥미롭지만, 아픈 의학과 과학의 역사가 나옵니다. 

오랫동안 사실이나 진실로 믿어졌고, 의심 받지 않았던 인간의 몸을 둘러싼 지식들이 어떻게 잘못 생산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생산되지 않았는지 이야기합니다. 요즘 코로나19 백신의 지적 재산권 면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책에서는 그에 앞서 왜 말라리아와 같이 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질병에 대해 신약 개발이 적게 이루어졌는지 불편한 진실을 말합니다. 중세 서양 의학의 최고 권위자로서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전 받지 않았던 갈레노스 해부학에 대해, 관찰과 데이터와 실험을 통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은 당대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눈으로 보이고, 쉽게 느껴지는 직관에 대해 의심하고, 새로운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에서, 인류는 진보하였고, 과학은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학을 통해 우리가 함부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흑인, 여성, 동양인, 중국인을 구분지어 차별하고 낙인찍는 것이 사실은 근거가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자들도 약을 꾸준히 먹어 체내 바이러스 농도를 일정 수준 미만으로 떨어뜨리면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HIV 감염인들의 자살은 같은 연령 비감염인보다 10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질병에 대한 비과학적인 혐오와 낙인 때문입니다.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들에게도 혹시 치료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자기 관리를 잘 못한 사람, 사이비 종교에 빠져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쉽게 낙인을 찍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 소수자가 됩니다. 토드 로즈 교수의 《평균의 종말》에서 이야기하였죠. 전투기 좌석을 설계하는 데에 "평균적인 체형"에 맞추면 아무도 맞지 않는 좌석이 나온다고.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든 이게 "정상"적이고, "평균"이며, "표준"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고 우리 몸은 여러 측면에서 다르고, 그것이 비난받고 차별받을 이유는 아닙니다.

2006-03-07

Book review: A theory of fun for game design

Bookcover: A theory of fun for game design

It seemed so exciting to look into the world of game design, and theory of fun at first. It was quite a burden, however, to continue reading it without understanding and capturing the grand pictures of what the author tried to deliver. The author, Raph Koster is one of the most active game designers while the reader, Greg is one of the worst game players. The actual problem did not lie in the ignorance of games but also in lack of extended knowledge to grasp the ideas provided by Raph, the one with vast knowledges ever in the field of game development, cognitive science, social psychology, musical composing, even art. He started his writing with a question, "Why a game has full of fun while the other is just dull?" The introduction of way of how human brain works follows to pave the way for his remaining chapters. He regarded the game as a kind of learning. Therefore it was important to adjust the level of difficulty in a game in order to provide player an adaquate level of learning, problem solving, pattern recognizing, or exploring experiences.

His comparison between games, music, and other performing arts were also insightful, if you have keen interest in human principles of high ordered human behaviours. He closes his book speaking in defense of the importance of game designer against the prejudice of old generations.

I must confess that the book is not a well-organized textbook nor a collection of fact-based theories but it seems to be a combination of various psychological findings and his full-fueled insight. It is not easy to keep the previous things or current topics in your memory to get a little bit better understanding and sense of fun in reading current pages. Sometimes I was confused and lost my ways in his footloose brainteaser. It is a book about fun for game design but is not a comic book easily covered in the crowded subway t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