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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3

눈 떠보니 선진국? 후진국?

예전에 LG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다닐 때에 해외 현지채용인 대상 교육 업무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본사가 있는 우리 나라로 오기도 하면서 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특수한 경우였습니다. 대한민국에 뿌리를 둔 회사, 즉 우리 나라에 본사가 있으니, 현지채용인들은 본사를 특수하게 바라봅니다. 즉, 본사의 방침, 정책, 비즈니스 프랙티스가 기준이 되며, 해외에도 이를 적용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 때마다 몇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 본사가 있는 우리 나라에서 만든 정책과 규칙이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할 수 있는가?
  • 우리 나라의 비즈니스 프랙티스는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고, 참고할만한 것인가?

우리 나라의 비즈니스 방식을 매우 존경스럽게(?) 바라보며 어떻게든 배우려고 애를 쓰던 나라로 중국과 인도가 떠오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본사에서는 이렇게 해결했다는 사례가 마치 최고의 솔루션인 것처럼, 중국과 인도 직원들은 열심히 필기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반면에 소위 말하는 서양(북미와 유럽)의 직원들은 대체적으로 본사의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달랐습니다. 저는 본사의 프리미엄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났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개발도상국에서 전 세계에 통하는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항상 고민이었습니다. 


눈 떠보니 선진국. 앞으로 나아갈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 박태웅 지음.
눈 떠보니 선진국. 앞으로 나아갈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 박태웅 지음.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대한민국을 List A(개도국)에서 List B(선진국)로 지위를 변경했습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설립된 이래 최초로 지위 변경이 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그 밖의 여러 가지 지표로 보아도,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고 분류해도 무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눈 떠보니 어느덧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의 『눈 떠보니 선진국』은 이렇게 급격하게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이 건너뛴 근대화의 몇 가지 요소들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압축 성장하며 급격하게 선진국의 요소들을 갖추게 된 우리 나라가 이제는 건너뛴 근대화 과정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성찰하고 있습니다. 

2021년 8월, 즉 문재인 정부 말기에 책이 출간되었으나, 2024년 1월 현재 보면 더 뼈아픈 지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책에서 언급한 것 중에 두 가지만 적어봅니다. 

신뢰 자본

선진국이라고 우리가 부러워했던 유럽 국가들에 가보면 의외로 소매치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차량 안에 귀중품을 그냥 놔두면, 쉽게 차량을 파손하고 귀중품을 가져가는 범죄가 생각보다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카페에 노트북을 펼쳐놓은 채로, 화장실도 가고, 자리를 비우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어딘가에 지갑을 놓고 왔는데, 시간이 꽤 지나서 찾으러 가도 안전하게 지갑이 남아있었던 경험도 가끔 하게 됩니다.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없고, 검표하는 게이트도 없이 바로 차에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에 축적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신뢰는 정말 자랑스러워할 만한 자산입니다. 신뢰가 없었다면 모든 사람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합니다. 신뢰를 저버린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한 제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큰 금액의 횡령을 저지른 재벌 총수나, 큰 금액의 뇌물을 받은 정치인이나, 큰 규모로 주가 조작을 저지른 사람들이 집행유예를 받거나, 금방 사면을 받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뭇사람들이 쌓아놓은 일상의 신뢰가 커다란 권력형 범죄와 송방망이 처벌에 의해 무너집니다. 『권력의 심리학』에서도 말합니다. 권력자가 다른 모든 사람을 범죄자로 간주하고 바라보는 판옵티콘을 사회에 적용할 게 아니고, 부패의 가능성이 높은 권력을 향해 뭇사람들이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아야 합니다. 


데이터 공개

우리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공공 데이터 지수에서 2015년, 2017년, 2019년에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디지털 전환, 나아가 인공지능의 시대에 데이터는 산업화 시대의 석유와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국 규모의 데이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생산하는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정부에서의 데이터 공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정부 기관에서 공개하는 데이터는 한/글(아래아한글) 형식으로 된 것들이 많습니다. 또, 숫자가 가득한 예산표, 비용 집행표가 그냥 PDF로 공개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사람이 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데이터는 기계가 읽을 수 있어야, 기계가 처리를 하고, 가공을 하여 새로운 데이터나, 의미있는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데이터법 정보 모델 스키마(DATA Act Information Model Schema: DAIMS)가 있어, 예산 보고서를 기계가 처리할 수 있도록 공개된, 표준 포맷을 지정해놓았다고 합니다. 우리도 데이터가 분석 가능한 형식으로 공개가 되면, 정책의 기획, 실행, 평가 단계에서 데이터 기반의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민간 연구소나 기업들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는 그 밖에도 우리가 급하게 건너 뛰면서 놓쳐버린 선진국의 요소들을 잘 간파하고, 일부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견제와 균형이 없는 권력(검찰 권력, 판사 조직, 일부 공무원 조직 등)에 대한 문제점, 문제를 정의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시도들, 정부 재정 정책에 대한 제언,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교육 등 다양한 이슈들이 나옵니다. IT 현자라고 불리우는 저자의 문제 정의 능력이 돋보이는 책이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생성형 AI가 세상을 뒤바꿔버린 2024년 현재 시점에서 보아도 매우 유용합니다. 정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2021-06-01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신현호 저.

제목이 약간 도발적이다. 너희들은 감으로 이야기하지만 나는 객관적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것인가? 이 책을 집어든 것이 대략 1년 쯤 전이었던 것 같다. 한참 데이터 관련 책들을 모두 읽어보자고 작심하던 때였다. 박형준의 『빅데이터 빅마인드』, 스타벅스의 데이터 과학자 차현나가 쓴 『데이터 읽기의 기술』,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연세대 산업공학과 임춘성 교수가 쓴 『멋진 신세계』,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가 쓴 『증거의 오류』, 한양대 경영대학 장석권 교수가 쓴 『데이터를 철학하다』 , 구글 데이터 과학자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 등을 보았다.

그 중에 증거의 오류와 데이터를 철학하다는 읽다가 너무 지루해서 집어던졌다. 가장 재미있게 본 두 권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와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였다. 전자는 구글의 검색 데이터만 가지고도 많은 사회 현상을 설명/예측할 수 있는 경제학자 출신 데이터 과학자의 통찰이 빛났었다. 후자의 책 역시, 경제학자 출신의 데이터 과학자가 데이터로 설명력을 높여주는 여러 가지 인간 집단의 특성과 사회적인 현상을 바라보는 틀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고 인사이트를 주었던 책은 『빅데이터 빅마인드』, 데이터 과학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하게 알고 싶어 잔뜩 기대했지만 별로 기대에 차지 않았던 책은 『데이터 읽기의 기술』이었다.

경제학자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관심사들이 결국 심리학자들의 관심사와 얼마나 중첩되는지 엿보게 된 것 같다. 세상 일에 관심을 갖는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찰한다. 그 데이터는 결국, 사람들의 행동과 반응을 집합적으로 모은 것이고, 그 안에는 인간 행동의 원리, 심리학의 관찰과 실험 데이터가 들어있다. 마치 데이터라는 다리를 통해, 세상과 인간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도록 여러 학문들이 만난다고나 할까. 

책은 상당히 재미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생각해보자.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온 곳에서는 다음에도 당첨자가 또 나올까? 지금까지 슛을 많이 넣은 농구 선수는 다음 번에  슛을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일까? 투스트라이크 이후에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 확률은 낮아질까? 전염병 예방 백신을 맞고 부작용으로 사망할 확률보다 전염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은데 왜 어떤 사람들은 백신을 안 맞으려고 할까? 유전무죄는 실제 법정에서 판결 결과로 나타날까? 딸을 가진 아빠들은 더 페미니스트 성향을 갖게 될까? 국회의원이나, 이사회에 여성 할당제를 실시하면 능력이 안 되는 여성들이 더 등용될까? 월드컵 기간에는 심장 마비로 인한 사망률이 더 높아질까? 1인1투표를 통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동등한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일까? 왜 백화점/인터넷 할인가는 9,900원과 같은 9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가? 잘 생긴 사람이 선거에서 뽑힐 가능성이 더 높을까? 정부 정책은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을까? 담배세를 얼마나 올려야 국민 건강에 이득이 될까? 중년의 위기는 실존하는가?

이런 여러 가지 재미난 질문들에 대해서, 단순히 주장이나 당위가 아니라, 데이터를 증거로 답을 찾아간다. 그 데이터들은 때로는 통제된 실험실의 데이터이기도 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응답 데이터이기도 하고, 시장이나 주가를 분석한 데이터이기도 하고, 오랜 기간 축적된, 또는 추적하거나, 관찰한 데이터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는 휴리스틱(heuristic, 발견법)이라는 간편하고 훌륭한 의사결정 기제가 있다. 그러나 휴리스틱은 종종 많은 편파와 오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증거와 데이터에 기반해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세상의 다양한 데이터를 어떻게 바라보고, 수집하고, 끌어와야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모범 사례들을 접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