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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4

정환호 작곡가의 『꽃 피는 날』악보

정환호님은 클래식 작곡가이지만, 크로스오버 성격의 작품 및 연주를 활발히 하고 있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입니다. 그가 만든 아트팝(art pop) 성격의 곡들은 클래식 음악처럼 품위가 있으면서도 일반 사람들의 귀에 쉽게 들어오는 감칠맛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바로 『꽃 피는 날』일 것입니다. 2017년 팬텀 싱어에서 처음 불리워졌다고 하네요.

일반적으로 고전적인 가곡은 피아노 반주가 아주 엄격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작곡가의 의도를 살리면서 편곡하고 고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유명한 윤학준님의 『마중』과 같은 곡도 현대적인 감성이 풍부한 가곡이지만, 반주를 섣불리 편곡하면 작곡가의 취지를 훼손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제가 『꽃 피는 날』을 뮤즈스코어로 프러듀싱 해보려고 여러 사람들의 연주를 들어보니, 반주가 모두 서로 달랐습니다. 멜로디도 클라이막스 부분이 Bb 음까지 높이 올라가는 버전과 그렇지 않은 버전,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있었습니다. 소프라노 손지수님이 노래하고 정환호님이 직접 반주하는 버전을 들어보면, 구할 수 있는 어떤 악보와도 같지 않았습니다.

차갑고 거친 파도가 밀려오지만 멀리 여명이 비치는 바다의 모습
차갑고 거친 파도가 밀려오지만 멀리 여명이 비치는 바다의 모습(AI가 생성한 이미지)


되도록 작곡가의 오리지널을 최대한 구현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변형된 여러 버전들을 조합하고, 필요에 따라 다시 아주 조금 변형하여 뮤즈스코어로 제작해보았습니다. 거친 파도와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좁은 모퉁이에서 작게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희망이 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시린 한숨이 나오는 하루였다고 해도, 한줄기 빛과 같은 위로를 주는 노래입니다.



악보/연주

꽃 피는 날 – 정환호 by Greg SHIN

가사

홀로 있는 밤 시린 공기가
모통이 구석진 곳 차갑게 스밀 때
흔적도 없는 빛 바랜 그 곳에
잠시 기대어 생각을 해 본다
난 가끔씩 그려 보았네
그리움을 뱉어낸 뒤에 꿈꾸는 날들
난 가끔씩 꿈꿔 보았네
차가운 가슴 뛰게 하는 바랬던 날들
지쳐 있던 나를 일으켜
차갑고 깊은 바다 먼 곳에서
거센 파도와 차가운 바람과
시린 한숨들이 입가에 맺힐 때
난 가끔씩 꿈꿔 보았네
차가운 가슴 뛰게하는 바랬던 날들
지쳐있던 나를 일으켜
차갑고 깊은 바다 먼 곳에서
거센 파도와 차가운 바람과
시린 한숨들이 입가에 맺힐 때
내 마음에 위로가 되어
잊혀진 기억 초라한 그곳에
작고 하얗게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운 날 숨쉬는 오늘이
아름답게 아름답게 피어나


제작 노트

피아노 반주는 가상 악기인 Pianoteq 8을 썼습니다. 다른 작업에서는 피아노 전체의 다이나믹 레인지를 수동으로 좀 조정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기본값을 썼습니다. 그래서 셈여림이 약간 기계적으로 급변하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사람이 불러야 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기계음으로 표현하느냐"입니다. 이번에는 많이 썼던 오보에 대신에 SoundFont의 플루트를 썼습니다. 사운드폰트의 오보에 소리는 너무 직선적이고 클래식하게 들려서, 이 곡처럼 약간 팝 성격이 들어있는 곡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여러 연주 버전을 조합(?)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아주 일부분 편곡이 들어갔습니다. 간주 부분 32~37마디가 미세하게 수정이 들어갔고, 55마디에서는 음이 Bb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65마디 종지 부분도 여러 버전이 있어서, 코드를 계속 연주하지 않고 약간 변형을 준 버전을 택했습니다. 41~42마디도 원래 변박(4/4 → 4/2)이 있어야 하는데, "바랬던 날들"의 "들"을 길게 빼면서, 중간에 화음(코드)을 바꾸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그 밖에도 아주 미세하게 한 두 음씩 수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2025-09-02

『메타필링』을 읽고

메타필링: 성공과 행복을 결정짓는 감정의 기술 (송오현, 김성태)
메타필링: 성공과 행복을 결정짓는 감정의 기술 (송오현, 김성태)

책을 주의깊게 다 읽었지만, 나는 아직도 메타필링이 뭔지, 감성지능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메타가 붙은 이유가, 자기 감정을 인지하고, 이름붙일 수 있는 능력을 특별히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긍정적, 부정적 감정을 의식적으로 조절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는 특별한 능력을 말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감정, 감성이 자율신경계의 반응인지, 아니면 의식적으로 조절 가능한 행동과 실천 영역인지도 더 혼란스러워졌다.

신경과학, 심리학, 건축학, 동물 행동 연구, 사회학, 문학, 철학 등 방대한 영역의 매우 많은 문헌들을 탐색하고 그 시사점을 엮어내려고 한 것 같다. 수많은 문헌과 연구를 인용하여 주장을 펼쳐가고 있지만, "왜" 그 맥락에서 그 연구를 인용해야 했는지에 대한 집요한 성찰이 과연 있었을까? 그 많은 실험, 분석, 조사의 풍성함과 정교함은 사라지고, 한 두 마디로 요약된 연구의 결론들은 빈약하고 피상적인 껍데기만 남아서 끝없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결론에서 과잉 일반화하거나 소위 자기계발서에서 자주 나오는 "좋은 말" 시사점을 너무 성급하게 뽑아내고 있다. "공감", "긍정", "경청", "객관적~~" 등의 요소들이 건강한 삶, 좋은 인간 관계, 바람직한 리더십, 긍정적 조직문화, 종업원 만족도, 성과 향상 등에 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들의 인용은 그다지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오히려, 신선하고 새로운 것은, 이를테면, 우리가 몰랐던 "공감"의 부정적 측면(예를 들면, 지나친 공감이 내집단 편파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사실 증거와 에피소드, 스토리를 통해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와 같은 저자의 주장을 전하는 논설과, "이것을 매일 하는 게 좋다"는 자기개발서의 논조와, "이런 연구 결과가 있었다"는 과학적 지식을 채워주려는 세 가지 목적 사이에서 애매한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어떤 목적도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마지막에 부록으로 첨부된 "메타필링 감성지능 측정 설문지"가 과연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문항들을 자세히 보면, 극단적인 자기 보고 형식인데, 그것도 행동의 빈도나 어떤 상황에서 이런 반응을 주로 한다와 같이 그나마 어느 정도 사실적인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나는 대화 중 분위기나 상대방의 감정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한다."와 같이 자신의 능력을 자기 보고에 의해 측정하는 듯한 문항들이 대부분이다. 마치 IQ 검사를 "나는 큰 숫자들의 곱셈을 암산으로 빠르게 할 수 있다."와 같은 문항으로 검사하려는 것과 같아 보인다.

2025-04-23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기리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종하셨습니다. 2014년에 한국에 오셨을 때, 병자와 빈자와 상처 받은 사람들을 향했던 교황님의 관심과 위로가 아직도 따뜻하고 아련하게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권력을 가졌지만 휘두르지 않고, 명예로운 자리에 있었으나 자랑하지 않고, 낮은 곳을 향하여 겸손과 온유와 사랑을 보여주신 그의 삶을 묵상해봅니다. 저는 그와 닮은 삶을 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라고 하신 말씀처럼 그가 뿌려놓은 사랑이 저에게도 오래도록 빛이 되고, 길이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위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 씨를 위로하고 있다. 2014.8.16 (사진 출처: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연합뉴스)



예전에 작업했던 음악 2개를 골라봤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성인이라 불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영화로 만든 "Brother Sun, Sister Moon"이라는 영화의 주제가의 메인 멜로디를 피아노 솔로로 편곡한 것입니다.

Brother Sun, Sister Moon – Donovan by Greg SHIN

더 오래 전에 이것을 피아노로 스케치했었는데, 악보로 만들면서 조금 달라졌습니다.

Brother Sun, Sister Moon 주제곡 멜로디 피아노 연주 (Box.com)


두 번째 곡은, 2014년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그의 방문을 기념하여 노영심이 만든 노래, "코이노니아 (우리 모두 선물이 된다)" 입니다. 

코이노니아 (우리 모두 선물이 된다) – 노영심 by Greg 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