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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7

(나만의) 2023년 올해의 책

2023년에는 총 21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작년보다는 독서량이 조금 줄었습니다. 올해는 인생을 요동치게 만드는 큰 사건에 대한 여파로 하반기에는 집중해서 책을 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당장 해결되지 않을 큰 짐과 난관이 올 때에, 책은 잠시나마 저만의 환상적인 메타버스를 제공해주고, 위안과 새로운 자극이 되었으며, 작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도 해주었습니다. 


2023년 올해의 책


올해의 책을 뽑으려면, 사실 시장 조사라도 광범위하게 해야 하고, 출판계의 흐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 하고, 또 독서량도 매우 많아야 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제가 오래 보았던 책 가운데, 인상 깊었고, 감동 받았고, 때로는 충격을 받았던 책들을 정리해봅니다. 연초에 읽었던 책들은 벌써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네요ㅠㅠ.

소설/문학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


올 초에는 저에게 가장 생경했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을 보았습니다. 동아프리카의 작은 자치 국가인 잔지바르 출신의 학생이 영국에 유학가서, 조국에 불어닥친 혁명의 광풍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영국 사회의 온전한 일원이 되지도 못한 채, 과거의 이야기들을 풀어냅니다. 등장 인물들의 이름, 지명도 낯설고, 아프리카의 문화적, 시대적 배경을 잘 모르다보니,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다 생소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잘 그려진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한 독자에게도 진한 감동과 재미를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 온갖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토대로 아버지의 삶을 웃프게 소환해낸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제가 유일하게 종이책을 서점에서 구해서 보았습니다. 

이영서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과 그림이 빛나는 『책과 노니는 집』은 아이가 학교 과제로 읽던 아동 문학이었습니다. 

김진영의 『마당이 있는 집』은 괴로운 현실에서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을 때 제가 찾은 스릴러 소설이었습니다. 스릴러 이상의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올해 마지막 소설은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였습니다. 섬세하고 인간적인 이야기가 아름다운 문장에 담겨 있는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인데, 사실 마지막에 예상치 못했던 반전(?)도 있어서, 더 여운을 길게 남겼습니다. 

경제/경영

김정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
김정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


올해는 "경제" 관련 책들을 몇 권 보았습니다. KBS 서영민 기자가 쓴 『거대한 충격 이후의 세계』는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의 큰 변화와 사건들의 연결 고리를 심도있게 분석해서 이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대한 배려와 대책도 잊지 않은 수작이었습니다. 

김정인 작가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는 역사책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손을 떼기 어려운 한국의 경제 흑역사입니다. 오늘날 뒤돌아보면, 우리 나라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왜, 어떻게 일어났었고, 그것이 경제적으로,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명쾌하게 풀어냈습니다. 

박종훈 기자의 『자이언트 임팩트』도 전 세계 거시경제의 흐름을 세계사적인 맥락과 정치/사회적인 배경과 함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올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세이노의 가르침』이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 좀 애매하긴 한데, 상당히 충격적으로 보았던 책이었습니다. 흔한 자기계발 서적에서는 공통적으로 "긍정적"인 마음과 시각으로 삶을 살아가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식의 서사가 있습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그런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자수성가한 노인의 경험을 날 것으로 풀어낸 흔하지 않은 자기계발 서적이었습니다. 

인문/과학

하영원의 『결정하는 뇌』
하영원의 『결정하는 뇌』


경영학 교수 하영원의 『결정하는 뇌』는 경영학이나 사회심리학의 의사결정 이론을 한 학기 과정으로 개설했을 때 쓸만한 교과서에 가까웠습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쉬지 않고 나오기때문에 밑줄을 긋고, 하이라이트를 한다면 온전한 페이지가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또 교과서이기 때문에 항상 옆에 놓고 참고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과학도 이렇게 쉽고 친근하게 풀어내는 유시민 작가의 글솜씨와,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대한 작가의 학습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이 책에서 얻은 과학과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원동력 삼아, 폴 굿윈의 『숫자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를 보았습니다. 정통 수학책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많은 숫자와 통계를 접하는 현대인들이 숫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또 인간이 숫자에 왜 이렇게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다음 책

한 권의 책이 끝나면, 다음 책으로 무엇을 볼까 고민하면서 탐색하고 방황하는 시간이 꽤 길어질 때도 있습니다. 한편으론, 다음에 봐야 할 책들이 대기 목록에 올라와 있기도 합니다. 어떤 책이 대기 목록에 올라오는 경로가 몇 가지 있습니다. 

라디오에서 소개/추천해주는 것

저는 KBS 1 라디오를 많이 듣습니다. 운전할 때, 이동할 때, 그리고 집에서 집안일 할 때, 홍사훈의 경제 쇼, 김태훈의 시대음감, 생방송 주말 저녁입니다, 최경영의 최강 시사, 이대호의 성공 예감,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 주진우 라이브 등을 즐겨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정권의 방송 장악 작전에 의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별도의 책 소개 코너가 있거나, 아니면 화제가 되는 작가의 인터뷰가 나오기도 합니다. 가만히 인터뷰를 듣고 있다가 이 사람이 누구지? 라고 사람에 관심이 생기고, 이어서 그 사람이 쓴 책에 관심이 가게 되기도 합니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 소개해주거나, 또는 작가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참 괜찮다 싶은 경우, 다음에 읽어봐야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같은 작가의 다른 책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이 사람이 쓴 다른 책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갑니다. 그렇게 해서 관심이 생긴 작가는 김승섭, 유현준, 애덤 그랜트, 문유석, 유시민, 박웅현 등이 있습니다. 

참고 문헌

작가들은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 수백 권의 참고 도서를 본다고 합니다. 그 참고 도서 중에 내가 관심이 가는 책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 책을 고르기도 합니다. 

책 광고/카드 뉴스

포털 사이트나 신문사 사이트에 책 소개가 나오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단순히 텍스트로 책 소개가 나오기도 하지만, 광고인지 기사인지 모를 만화나 카드 뉴스로 나오기도 합니다. 간혹 이런 카드 뉴스를 보고, 그 책을 꼭 읽어보고 싶은 경우가 생깁니다. 

가용성

제가 보는 책의 90% 이상은 전자책입니다. 전자책 디바이스는 스마트폰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휴대하고 다니는 유비쿼티와 극강의 접근성 때문에, 태블릿, PC, 전자책 전용 기기가 대체할 수 없는 편리함을 줍니다. 그리고 읽는 책의 90% 이상은 전자 도서관에서 빌려서 봅니다. 이렇게 전자책과 도서관이라는 두 집합의 교집합에 들어오는 책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교집합 안에서 열심히 뒤져서 다음 책을 고르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2024년에 보고 싶은 책

여러 경로에서 얻은 내용을 바탕으로, 내년에 보고 싶은 책들을 몇 개 골라놓았습니다. 

김승섭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안나의 집을 운영하는 김하종 신부의 『사랑이 밥 먹여준다』는 책은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알게 되어서, 목록에 올려놓았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는 김승섭 교수의 새 책이기 때문에 믿고 대기 리스트에 올립니다. 얀-베르너 뮐러의 『민주주의 공부』는 퇴행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아이디어를 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읽을 목록에 올렸습니다. 『오리지널스』에서 깊은 인사이트를 주었던 애덤 그랜트 교수의 『기브 앤 테이크』는 오래 전부터 읽을 책 상위 목록에 있었는데, 가용성의 범위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광풍을 일으키며 이미 엄청난 시장을 생성한 생성형 AI 툴들을 정리해놓은 백과사전이랄 수 있는 김덕진 소장의 『AI 2024』를 읽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