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주의깊게 다 읽었지만, 나는 아직도 메타필링이 뭔지, 감성지능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메타가 붙은 이유가, 자기 감정을 인지하고, 이름붙일 수 있는 능력을 특별히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긍정적, 부정적 감정을 의식적으로 조절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는 특별한 능력을 말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감정, 감성이 자율신경계의 반응인지, 아니면 의식적으로 조절 가능한 행동과 실천 영역인지도 더 혼란스러워졌다.
신경과학, 심리학, 건축학, 동물 행동 연구, 사회학, 문학, 철학 등 방대한 영역의 매우 많은 문헌들을 탐색하고 그 시사점을 엮어내려고 한 것 같다. 수많은 문헌과 연구를 인용하여 주장을 펼쳐가고 있지만, "왜" 그 맥락에서 그 연구를 인용해야 했는지에 대한 집요한 성찰이 과연 있었을까? 그 많은 실험, 분석, 조사의 풍성함과 정교함은 사라지고, 한 두 마디로 요약된 연구의 결론들은 빈약하고 피상적인 껍데기만 남아서 끝없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결론에서 과잉 일반화하거나 소위 자기계발서에서 자주 나오는 "좋은 말" 시사점을 너무 성급하게 뽑아내고 있다. "공감", "긍정", "경청", "객관적~~" 등의 요소들이 건강한 삶, 좋은 인간 관계, 바람직한 리더십, 긍정적 조직문화, 종업원 만족도, 성과 향상 등에 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들의 인용은 그다지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오히려, 신선하고 새로운 것은, 이를테면, 우리가 몰랐던 "공감"의 부정적 측면(예를 들면, 지나친 공감이 내집단 편파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사실 증거와 에피소드, 스토리를 통해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와 같은 저자의 주장을 전하는 논설과, "이것을 매일 하는 게 좋다"는 자기개발서의 논조와, "이런 연구 결과가 있었다"는 과학적 지식을 채워주려는 세 가지 목적 사이에서 애매한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어떤 목적도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마지막에 부록으로 첨부된 "메타필링 감성지능 측정 설문지"가 과연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문항들을 자세히 보면, 극단적인 자기 보고 형식인데, 그것도 행동의 빈도나 어떤 상황에서 이런 반응을 주로 한다와 같이 그나마 어느 정도 사실적인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나는 대화 중 분위기나 상대방의 감정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한다."와 같이 자신의 능력을 자기 보고에 의해 측정하는 듯한 문항들이 대부분이다. 마치 IQ 검사를 "나는 큰 숫자들의 곱셈을 암산으로 빠르게 할 수 있다."와 같은 문항으로 검사하려는 것과 같아 보인다.
몇 달 전부터 알뜰 통신사의 요금제로 바꾼 후에 전자책 구독 서비스인 '밀리의
서재'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서, 재미있는 책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도서관 전자책 서비스도 좋지만, 없는 책이 많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최근에 읽은 책들은,
EBS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등이 있습니다. 읽은 기록들을 살펴보니, 대략 두 권의 비소설을 읽는 동안,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을 한 권 정도 읽었던 것 같습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읽어볼 책들을 찾아 헤매다 우연하게 발견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라는 작품을 접했습니다. 작가 이름이 차인표입니다. 맞습니다.
유명한 배우, 차인표씨입니다. 저는 배우 차인표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소위 바른 생활 사나이라고 알려졌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책 표지가 참 아름답고,
제목이 조금 낭만적(?)입니다. 마치 헤르만 헤세의 한 작품이나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책표지가 아름답습니다.
1931년 일제 강점기, 백두산 기슭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저는 대략 20여년 전에 회사 사람들과 함께 중국을 통해 백두산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 때 보았던 신비한 느낌이 영롱한 문장으로 정말 잘 그려져 있습니다.
천둥소리를 내며 하얀 물을 쏟아 내는 폭포 위를 날아 우산대처럼 하늘로 길게
뻗은 이깔나무 숲을 지나니, 끝없이 펼쳐진 노란 들꽃밭이 나타납니다. ...
억새밭이 끝나는 그곳에 작은 언덕이 봉긋 솟아있네요.
백두산 자락에서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끼 제비의 시각으로 하늘에서 마을
사람들의 삶을 바라봅니다. 이야기를 구수하고, 따뜻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호랑이 마을의 촌장님 댁, 너른 억새밭, 잘가요 언덕의
꿀밤나무가 눈에 선하게 잡힙니다. 그리고 '오세요 종' 소리가 "땡~ 땡~" 멀리서 들리며, 때로는
차가운 백두산 안개 속에서 미세한 호랑이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4D 영화관에 온
것처럼 말이죠.
작가는 1997년 한국에 오셨던 훈 할머니를 보고, 그 형편없는 시절을 버텨 낸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무려 10년에 걸쳐서
원고를 붙잡고서, 백두산을 직접 탐방하고, 사실을 검증하며,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고 계시는 '나눔의 집'에 가보고, 다듬고 또 다듬어 세상에 선보인
작품입니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시대였지만, 백두산의 천지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우리 나라와
일본 젊은이들이 무도한 시대에 맞서 서툰 사랑을 지켜내려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호랑이 마을의 순이를 비롯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물건처럼'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파렴치한 죄를 널리 알리고 죄인들을 응징하겠다는 작가의 첫 마음은,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어갑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해자들이 진정한 반성과 사과, 용서를 구함으로써, 할머니들과 그들 사이에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라고요.
잔인하고, 아프고, 시린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들에 담아서 선사해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눈 떠보니 선진국』을 읽고 나서 같은 작가가 쓴 『박태웅의 AI 강의』도 꼭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생성형 AI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원에서 신경망 배울 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팠어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는 소위 인공지능의 겨울이었던 시기여서, 인공지능이 이렇게 느닷없이
성능이 좋아지고, 능력을 갖추게 되리라고 예상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박태웅의 AI 강의
서점에 가보아도, 챗GPT에 대한 책들이 넘쳐납니다. 많은 책들이 이것을 어떻게
잘 활용하여, 나의 업무 생산성을 극적으로 높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좀
더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그럴듯한 콘텐츠를 빠르게 만들어서
인터넷 세상을 오염시키는 방법에 대한 글과 영상들은 이미 넘쳐납니다.
그런 와중에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더 나아가 인공일반지능(AGI)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거시적인 영향과 파급 효과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보고,
이면에 숨어있는 위험을 인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책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박태웅의 AI 강의』는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지만,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전체 다섯 개의 장(1강~5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저는 3강,
열려버린 판도라의 상자였다고 느꼈습니다. 오픈AI의 샘 알트먼은
"인공일반지능이 만약에 고장나면 무엇인가 다른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특정 회사가 이런 AI를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요즘 오픈AI의 행보는 갈수록 "클로즈드" AI로 향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 설명할 수 없는 요즘의 AI는 원하지 않는 결과(편향되었거나,
차별적이거나, 허위이거나, 개인 정보를 침해하거나 등)가 나왔을 때, 그것을
고치는 방법도 근본적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스카이넷이 인간을 공격하게 되는 상황까지는
상상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가 이미
열렸고, 이것에 대해 전사회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어떤 미래가 올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소셜 미디어(인스타그램)를 사용하는 정도와 미국 소녀들의 자살률 증가가 높은
상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메타의 과학자들은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에 의해 우리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에코 체임버(echo
chamber)에 빠져 있을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정치적인 극단주의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대 기업에 의해 움직이는 소셜 미디어의 부작용에도
우리는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의 부작용에
대해 지금부터 고민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2020년 구글에서 인공지능 윤리를 연구하다 해고당한 팀닛 게브루(Timnit
Gebru)가 쓴 논문, <확률적 앵무새의 위험에 대하여: 언어 모델은 너무 커져도
좋을까?>에서 지적한 네 가지 위험성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개리 마커스도
비슷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첫째, 거대 언어 모델을 운영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적 비용과, 매우 많은
양의 전기, 탄소, 물이 소비됩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에
가장 크게 타격을 줍니다.
둘째, 이 언어 모델 안에 어떤 편견과 왜곡이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모델에는 인터넷에서 영향력이 작은 국가와 민족의 내용은 누락되고, 부유한
국가의 관행은 더 많이 반영되어 모델이 생성한 답이 동질화될 수
있습니다.
셋째, 연구의 기회 비용입니다. 그럴 듯한 답을 내놓는 거대 언어 모델에
대부분의 연구비가 집중되어, 더 필수적이고 중요한 과제에 자원과 예산이
배분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잘 알려진 환각(hallucination)의 문제입니다.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허위 정보, 가짜 뉴스, 딥 페이크를 구분하고,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뚜렷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책에서는 오리지널의 실종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그럴듯하게 생성된 이미지들이 인터넷 세상을 도배하고, 인공지능이 생성한
그럴듯한 글들이 꽉차게 되면, 이제 인공지능은 더 이상 학습할 오리지널
데이터가 부족해지게 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인공지능의 성능은 점점 더
나빠진다고 합니다. 인터넷 세상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콘텐츠가 넘쳐나는 열린
세상이 아니라, 유사한 이미지와 자가 복사된 글들로 채워지는 닫힌 세계, 근친
교배로 다양성이 상실되는 세계가 될지도 모릅니다.
여섯 번째, 차별의 재생산입니다. 논란이 되어 폐기되었던 아마존의 인공지능
채용 시스템, 골드만 삭스의 인공지능 신용평가 시스템, 컴퓨터 비전의 발전에
혁혁한 기여를 하고 있는 이미지넷 등이 예로 언급되었습니다. 이런 시스템에
내재한 성차별, 인종차별, 기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차별적 패턴을
인공지능이 학습하여 차별은 확산되고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럽 연합은 2019년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미국은
「알고리듬 책무법안 2022」, 우리 나라는 「AI(인공지능)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뢰할 수 있고, 위험하지
않은 인공지능을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서 사회적인 합의와
대책을 잘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와튼 스쿨의 조직심리학 교수인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저자이다. 그의 책 『오리지널스』를 읽고 느꼈던 충격과 감동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쓴 다른 책들도 모두 읽어보아야 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오래되었다. 최근에 나온 『기브앤테이크』나 『히든 포텐셜』을 읽어보기 전에, 먼저 나왔던 『싱크 어게인』을 읽어보았다.
싱크 어게인: 다시 생각하기의 힘. 애덤 그랜트 지음. 이경식 번역
역시 풍부한 생각할 거리들을 제공해주었고,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믿음, 선입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무엇이 실수였을까 회상해보게 되었다.
네 가지 마인드셋이 나온다.
앞으로 내 믿음이 위험해질 때 과도한 설교에 의존하는 '①전도사'나, 남의 잘못만 따지고 드는 '②검사', 상대를 설득해서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정치 공작에 뛰어드는 '③정치인'의 방식으로는 내 자신의 업데이트와 상대방이 있는 설득, 협상, 토론, 논쟁의 현장에서도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을 다시 의심해보며, 새로운 사실과 데이터를 접할 때마다 기존의 믿음을 수정하고 업데이트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④과학자'의 마인드를 갖추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믿음 체계 또는 행동 양식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들이 있다. 그 중에는 후회스러운 지나간 일들도 있고, 앞으로는 다르게 행동하기로 마음먹은 것들도 있다.
첫째, 나의 전공과 나의 적성, 흥미를 한 곳에 가두고, 다시 생각하기에 실패했다. 나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인지심리학(조금 좁혀서 말하면, 지각심리학)을 공부했다. 그런 선택을 한 배후에는, 인간을 과도하게 "자연 과학"의 연구 대상으로 바라본 나의 편협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좀 더 "부드러운" 과학이랄 수 있는 인문학, 사회학, 상담 심리학, 사회 심리학에 대해서마저 눈과 귀를 상당히 닫아버렸다. 옳고 그름이 흑백 논리로 규정되지 않는 인문학적 사고의 깊이와 그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 것은 한참 나이가 든 이후였다.
둘째, 첫 번째 언급했던 전공의 연장선에서, 나의 커리어를 발전시켜 나감에 있어서, 다시 생각하기를 통한 확산과 수렴을 적절하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직장 생활 초창기에 흥미를 가지고 더 발전시켜나가고 싶은 나의 전문성은 "온라인 교육", 소위 말하는 "이러닝"이었다. 그런데, 나의 정체성을 그것과 동일시한 나머지 일종의 몰입의 상승 효과(escalation of commitment)를 통한 터널 시야(tunnel vision)에 빠졌던 것 같다. 회사에서 나의 커리어를 수평 확장할 기회(예를 들면, 회사의 중장기 경영 전략 수립, 변화 관리 에이전트 등)에 소극적으로, 또는 자신감 없이 임하게 되었다. "이러닝"은 나중에 "디지털 러닝", "소셜 러닝", 관련된 "웹 접근성 기술" 등으로 조금씩 변형되어 갔지만, 큰 틀에서 나는 다시 생각하기를 통한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커리어와 관련되어 아이에게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라는 어리석은 질문도 이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는 아직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사회와, 또 본인의 흥미, 관심, 목표가 계속 바뀔 것이고, 서서히 발견해나갈 것이다. 인공지능이 직업의 세계를 앞으로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알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벌써부터 "나는 무엇이 될거야"라고 단정하며,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닫아버릴 수 있겠는가. 그리고, 무엇이 "되는 것"은 궁극의 목표가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다시 생각하고, 다시 업데이트하며 행동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
세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직장에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이다. 초급 리더가 되었을 때, 나는 그동안 봐왔던 선배 리더들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과도하게 쏟았다. 그런데 그것이 "착한" 리더가 되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또, 나의 생각에 대해 비판적으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을 적절한 도전 네트워크(challenge network)로 온전히 활용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의식적으로는 열린 마음과 겸손함을 갖추려고 계속 다짐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의 행동과 결정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을 나의 정체성에 대한 비난으로 판단하고, 더 마음을 닫아버렸던 것은 아닌가 하고 후회한다.
네 번째,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다. 나는 정치적인 성향은 비교적 뚜렷했다. 그런 시각으로 다른 한 쪽 정치 집단을 바라보면 상대방은 "바보 멍청이" 아니면, "악마" 둘 중의 하나로 보인다. 어떤 한 사람을 "악마"로 규정하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은 악한 행동이 되고, 좋아 보이는 행동의 기저에도 "저의"나 다른 "음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일말의 협상과 타협과 토론의 가능성도 닫혀 버린다. 물론 이런 시각을 나의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편향이 일상에서도 조금씩 베어나왔고, 그런 이유로 주변 사람들을 정상적인 "대화"의 상대로 잘 인정하지 않았던 속내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책에서는 협상과 설득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내용이 할애되어 있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은 협상과 설득에서도 상대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최근, 점점 더 물러설 수 없는 전면전으로 가고 있는 의사 집단과 정부의 갈등을 바라보며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양쪽 모두 상대방을 협상 가능한 파트너로 바라보고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노선의 선명성과 극단성이 상대방을 포기하게 하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노련하고, 유연한 파트너라면, 사안을 단선적으로 보지 말고, "복잡성"을 인정하고, 파고들며, 그 안에서 솔루션을 함께 찾아야 한다.
최근에 어떤 필요에 의해서, 내가 과거에 끔찍하게 싫어했던, 회계학과 법률 관련 책을 보고 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인데, 내가 좋아하는 과목보다, 이 두 개의 과목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렇게 싫어하던 영역에도, 깊이있는 "논리"가 있고, 인간 삶을 반영한 "복잡한" 체계가 있으며, 그것을 발견해가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물론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에서 말하듯이 이제 출발점에서 쪼~끔 맛을 본 무식한 사람이 많이 아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려고 의식적으로 신경을 쓴다.
독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즐거움을 준다. 하나는,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믿음 체계를 더 강화해주고, "그럼 그렇지"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강화해주는 즐거움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생각이 좁았거나, 틀렸거나, 대폭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즐거움이 없다면, 독서를 할 필요가 없다. 이제 50이 넘어서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앞으로 기존의 믿음을 계속 업데이트할 수 있는 두 번째 즐거움을 주는 독서를 계속 해나가고 싶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도심 번화가인 이태원에서 159명이 목숨을 잃은 믿을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났다. 2014년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기억이 아직
서늘하게 남아있는 상태에서 다시 한 번 큰 충격과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현재도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대통령은 끝내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재발
방지를 하자는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2017년에 나온 책이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재난,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 사건, 이민자나 성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건강,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 HIV 감염자에 대한 차별, 총기
규제와 살인 사건 빈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 삼성반도체 "클린룸"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 1995년 시카고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일정 정도 사회적인 원인으로 인해 개인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았던
사례들이다. 한 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신체와 정신건강의 위협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매우 컸고 일관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저자의 주장이 아니라 데이터로
모두 뒷받침되어 보여주었다.
김승섭 교수는 사회역학자이다. 한 개인의 건강, 질병과 그 사회의 여러 가지
요인들의 관계를 찾아서 밝혀내는 역할을 한다. 기존의 의학이 개인을 둘러싼
생리학적 원인과 임상 데이터로 설명하거나 치료하지 못하는 부분의 질병과
심리적인 고통에 대해 사회환경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명력을 더해주는 것이
사회역학이다.
책에 따르면, 사회적 안전망과 패자부활 기회가 빈약한 상태에서 고용 불안과
해고가 개인의 건강에 큰 악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렇게 개인이 사회적 도움의
손길이 부족한 상태에서 경제적 위기를 겪을 때,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불행히도 최근(2020년)까지도 우리 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율은 24.1명으로
OECD 국가 중에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살율이 급격히 증가한 시기도 IMF 구제 금융, 카드 대란, 글로벌 금융
위기와 같이 경제 위기와 연결되어 있다. 사회경제적인 위기에 취약한 개인들이
극단으로 내몰리며,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또 죽음으로 연결된다면, 그
개인으로서도, 그리고 우리 사회로서도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아픔을 겪은 개인에 대해 이웃과 사회는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을 하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 겪었던 상처와 아픔이 개인마다 다 다르고, 그것을
단순한 보상, 몇 번의 심리 치료를 제공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는 있을까? 그들의 아픔을 공감해주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을 줄 수 없다면,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이 건강한 사회가 해야 할 일이라는 김승섭 교수의 글에
밑줄을 긋는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지혜롭지 못해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원인으로 인해 생긴
아픔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그 아픔으로부터 새로운 길을 만들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과연 우리는 아프지 않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새로운
길을 잘 만들고 있는 것일까? 저자와 같은 분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고 감사할 따름이다.
예전에 LG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다닐 때에 해외 현지채용인 대상 교육 업무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본사가 있는 우리 나라로 오기도 하면서 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특수한 경우였습니다. 대한민국에 뿌리를 둔 회사, 즉 우리 나라에 본사가 있으니,
현지채용인들은 본사를 특수하게 바라봅니다. 즉, 본사의 방침, 정책, 비즈니스
프랙티스가 기준이 되며, 해외에도 이를 적용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 때마다 몇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본사가 있는 우리 나라에서 만든 정책과 규칙이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 나라의 비즈니스 프랙티스는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고, 참고할만한 것인가?
우리 나라의 비즈니스 방식을 매우 존경스럽게(?) 바라보며 어떻게든 배우려고 애를
쓰던 나라로 중국과 인도가 떠오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본사에서는 이렇게
해결했다는 사례가 마치 최고의 솔루션인 것처럼, 중국과 인도 직원들은 열심히
필기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반면에 소위 말하는 서양(북미와 유럽)의 직원들은
대체적으로 본사의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달랐습니다. 저는 본사의
프리미엄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났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개발도상국에서 전 세계에
통하는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항상 고민이었습니다.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의 『눈 떠보니 선진국』은 이렇게 급격하게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이 건너뛴 근대화의 몇 가지 요소들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압축 성장하며 급격하게 선진국의 요소들을 갖추게 된 우리 나라가
이제는 건너뛴 근대화 과정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성찰하고 있습니다.
2021년 8월, 즉 문재인 정부 말기에 책이 출간되었으나, 2024년 1월 현재 보면 더
뼈아픈 지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책에서 언급한 것 중에 두 가지만
적어봅니다.
신뢰 자본
선진국이라고 우리가 부러워했던 유럽 국가들에 가보면 의외로 소매치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차량 안에 귀중품을 그냥 놔두면, 쉽게 차량을 파손하고
귀중품을 가져가는 범죄가 생각보다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카페에 노트북을 펼쳐놓은 채로, 화장실도 가고, 자리를 비우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어딘가에 지갑을 놓고 왔는데, 시간이 꽤 지나서 찾으러 가도 안전하게
지갑이 남아있었던 경험도 가끔 하게 됩니다.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없고, 검표하는 게이트도 없이 바로 차에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에 축적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신뢰는
정말 자랑스러워할 만한 자산입니다. 신뢰가 없었다면 모든 사람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합니다. 신뢰를 저버린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한 제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큰 금액의
횡령을 저지른 재벌 총수나, 큰 금액의 뇌물을 받은 정치인이나, 큰 규모로 주가
조작을 저지른 사람들이 집행유예를 받거나, 금방 사면을 받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뭇사람들이 쌓아놓은 일상의 신뢰가 커다란 권력형 범죄와 송방망이 처벌에
의해 무너집니다. 『권력의 심리학』에서도 말합니다. 권력자가 다른 모든 사람을
범죄자로 간주하고 바라보는 판옵티콘을 사회에 적용할 게 아니고, 부패의 가능성이
높은 권력을 향해 뭇사람들이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아야 합니다.
데이터 공개
우리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공공 데이터 지수에서 2015년, 2017년,
2019년에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디지털 전환, 나아가 인공지능의 시대에 데이터는 산업화 시대의 석유와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국 규모의 데이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생산하는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정부에서의 데이터 공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정부 기관에서 공개하는 데이터는 한/글(아래아한글)
형식으로 된 것들이 많습니다. 또, 숫자가 가득한 예산표, 비용 집행표가 그냥
PDF로 공개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사람이 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데이터는 기계가 읽을 수 있어야, 기계가 처리를 하고, 가공을
하여 새로운 데이터나, 의미있는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데이터법
정보 모델 스키마(DATA Act Information Model Schema: DAIMS)가 있어, 예산
보고서를 기계가 처리할 수 있도록 공개된, 표준 포맷을 지정해놓았다고 합니다.
우리도 데이터가 분석 가능한 형식으로 공개가 되면, 정책의 기획, 실행, 평가
단계에서 데이터 기반의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민간 연구소나
기업들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는 그 밖에도 우리가 급하게 건너 뛰면서 놓쳐버린 선진국의 요소들을 잘
간파하고, 일부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견제와 균형이 없는 권력(검찰 권력,
판사 조직, 일부 공무원 조직 등)에 대한 문제점, 문제를 정의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시도들, 정부 재정 정책에 대한 제언,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교육 등 다양한
이슈들이 나옵니다. IT 현자라고 불리우는 저자의 문제 정의 능력이 돋보이는
책이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생성형 AI가 세상을 뒤바꿔버린 2024년 현재
시점에서 보아도 매우 유용합니다. 정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에는 총 21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작년보다는 독서량이 조금 줄었습니다.
올해는 인생을 요동치게 만드는 큰 사건에 대한 여파로 하반기에는 집중해서 책을
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당장 해결되지 않을 큰 짐과 난관이 올 때에, 책은
잠시나마 저만의 환상적인 메타버스를 제공해주고, 위안과 새로운 자극이 되었으며,
작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도 해주었습니다.
2023년 올해의 책
올해의 책을 뽑으려면, 사실 시장 조사라도 광범위하게 해야 하고, 출판계의 흐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 하고, 또 독서량도 매우 많아야 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제가 오래 보았던 책 가운데, 인상 깊었고, 감동 받았고, 때로는 충격을 받았던
책들을 정리해봅니다. 연초에 읽었던 책들은 벌써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네요ㅠㅠ.
소설/문학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
올 초에는 저에게 가장 생경했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을 보았습니다. 동아프리카의 작은 자치 국가인 잔지바르 출신의 학생이
영국에 유학가서, 조국에 불어닥친 혁명의 광풍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영국 사회의
온전한 일원이 되지도 못한 채, 과거의 이야기들을 풀어냅니다. 등장 인물들의
이름, 지명도 낯설고, 아프리카의 문화적, 시대적 배경을 잘 모르다보니,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다 생소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잘 그려진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한 독자에게도 진한 감동과 재미를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 온갖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토대로 아버지의 삶을 웃프게
소환해낸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제가 유일하게 종이책을 서점에서
구해서 보았습니다.
김진영의 『마당이 있는
집』은 괴로운 현실에서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을 때 제가 찾은 스릴러
소설이었습니다. 스릴러 이상의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올해 마지막
소설은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였습니다. 섬세하고 인간적인 이야기가
아름다운 문장에 담겨 있는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인데, 사실 마지막에 예상치 못했던
반전(?)도 있어서, 더 여운을 길게 남겼습니다.
경제/경영
김정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
올해는 "경제" 관련 책들을 몇 권 보았습니다. KBS 서영민 기자가 쓴 『거대한 충격 이후의 세계』는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의 큰
변화와 사건들의 연결 고리를 심도있게 분석해서 이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대한 배려와 대책도 잊지 않은 수작이었습니다.
김정인 작가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는 역사책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손을 떼기 어려운 한국의 경제 흑역사입니다. 오늘날 뒤돌아보면, 우리
나라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왜, 어떻게 일어났었고, 그것이 경제적으로,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명쾌하게 풀어냈습니다.
박종훈 기자의 『자이언트
임팩트』도 전 세계 거시경제의 흐름을 세계사적인 맥락과 정치/사회적인 배경과
함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올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세이노의 가르침』이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 좀
애매하긴 한데, 상당히 충격적으로 보았던 책이었습니다. 흔한 자기계발 서적에서는
공통적으로 "긍정적"인 마음과 시각으로 삶을 살아가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식의 서사가 있습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그런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자수성가한 노인의 경험을 날 것으로 풀어낸 흔하지 않은 자기계발
서적이었습니다.
인문/과학
하영원의 『결정하는 뇌』
경영학 교수 하영원의 『결정하는 뇌』는 경영학이나 사회심리학의 의사결정
이론을 한 학기 과정으로 개설했을 때 쓸만한 교과서에 가까웠습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쉬지 않고 나오기때문에 밑줄을 긋고, 하이라이트를 한다면 온전한
페이지가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또 교과서이기 때문에 항상 옆에 놓고
참고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과학도
이렇게 쉽고 친근하게 풀어내는 유시민 작가의 글솜씨와,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대한 작가의 학습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이 책에서 얻은 과학과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원동력 삼아, 폴 굿윈의 『숫자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를 보았습니다. 정통 수학책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많은 숫자와 통계를
접하는 현대인들이 숫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또 인간이 숫자에 왜
이렇게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다음 책
한 권의 책이 끝나면, 다음 책으로 무엇을
볼까 고민하면서 탐색하고 방황하는 시간이 꽤 길어질 때도 있습니다. 한편으론,
다음에 봐야 할 책들이 대기 목록에 올라와 있기도 합니다. 어떤 책이 대기
목록에 올라오는 경로가 몇 가지 있습니다.
라디오에서 소개/추천해주는 것
저는 KBS 1 라디오를 많이 듣습니다. 운전할 때, 이동할 때, 그리고 집에서
집안일 할 때, 홍사훈의 경제 쇼, 김태훈의 시대음감, 생방송 주말 저녁입니다,
최경영의 최강 시사, 이대호의 성공 예감,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 주진우
라이브 등을 즐겨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정권의 방송
장악 작전에 의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별도의 책 소개 코너가 있거나, 아니면 화제가 되는 작가의
인터뷰가 나오기도 합니다. 가만히 인터뷰를 듣고 있다가 이 사람이 누구지?
라고 사람에 관심이 생기고, 이어서 그 사람이 쓴 책에 관심이 가게 되기도
합니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 소개해주거나, 또는 작가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참
괜찮다 싶은 경우, 다음에 읽어봐야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같은 작가의 다른 책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이 사람이 쓴 다른 책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갑니다.
그렇게 해서 관심이 생긴 작가는 김승섭, 유현준, 애덤 그랜트, 문유석, 유시민,
박웅현 등이 있습니다.
참고 문헌
작가들은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 수백 권의 참고 도서를 본다고 합니다. 그 참고
도서 중에 내가 관심이 가는 책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 책을
고르기도 합니다.
책 광고/카드 뉴스
포털 사이트나 신문사 사이트에 책 소개가 나오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단순히
텍스트로 책 소개가 나오기도 하지만, 광고인지 기사인지 모를 만화나 카드
뉴스로 나오기도 합니다. 간혹 이런 카드 뉴스를 보고, 그 책을 꼭 읽어보고 싶은
경우가 생깁니다.
가용성
제가 보는 책의 90% 이상은 전자책입니다. 전자책 디바이스는 스마트폰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휴대하고 다니는 유비쿼티와 극강의 접근성 때문에, 태블릿, PC,
전자책 전용 기기가 대체할 수 없는 편리함을 줍니다. 그리고 읽는 책의 90%
이상은 전자 도서관에서 빌려서 봅니다. 이렇게 전자책과 도서관이라는 두 집합의
교집합에 들어오는 책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교집합 안에서 열심히 뒤져서
다음 책을 고르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2024년에 보고 싶은 책
여러 경로에서 얻은 내용을 바탕으로, 내년에 보고 싶은 책들을 몇 개
골라놓았습니다.
김승섭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안나의 집을 운영하는 김하종 신부의 『사랑이 밥 먹여준다』는 책은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알게 되어서, 목록에 올려놓았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는 김승섭 교수의 새 책이기 때문에 믿고 대기 리스트에 올립니다.
얀-베르너 뮐러의 『민주주의 공부』는 퇴행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아이디어를 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읽을 목록에 올렸습니다.
『오리지널스』에서 깊은 인사이트를 주었던 애덤 그랜트 교수의 『기브 앤 테이크』는 오래 전부터 읽을 책 상위 목록에 있었는데, 가용성의 범위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광풍을 일으키며 이미 엄청난 시장을 생성한 생성형 AI 툴들을 정리해놓은 백과사전이랄 수 있는 김덕진 소장의
『AI 2024』를 읽어보려고 합니다.
우리말 가운데 "이모"라는 단어가 주는 친근함을 과연 외국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소위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젊은 시절을 낯선 땅에서 보내며 살아왔던 이모들의 이야기가,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듯 선의의 거짓말처럼 세심하게 펼쳐진다. 처음에는 불의의 사고로 언니를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 주인공 해미의 눈으로, 나중에는 해미가 자라면서 조금씩 성숙해진 시각으로 다시 바라본 주인공과 이모들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마치 커다란 유화를 돋보기를 대고 조금씩 조금씩 살펴보자, 저쪽 한편에서는 알지 못했던 색깔과 질감을 다른 한편에서 발견하면서 풍성함을 얻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 가지 색깔로 모르는 것까지 똑같이 칠해버리려 하거든.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지극한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니까.
지극한 정성과 수고는 곧 사랑이며 배려이다. 해미의 친구 레나, 한수가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주려는 노력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려이다.
나는 유리병에 담아 대 대서양에 띄우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네게 보낸다. 나를 위해 너의 편지를 전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며칠 더 살 수 있게 했듯이.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다정한 마음은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르면서도 눈부신 독일의 햇살에 감탄했던 선자 이모에게도, 그리고 사고로 가족을 잃은 주인공에게도,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에게도,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안부를 걱정해주며 위로해준다.
내 삶을 돌아보며 더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제가 초기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들어서,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았던 조언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
무엇이든 정량화하고, 순위를 매기고, 척도를 만들고, 범주를 나눔으로써 소통이 쉬워지고, 애매모호한 것이 명확해지고, 취약점이 드러나고, 데이터에 기반한 정당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 맹목적인 "수(number)"에 대한 권위 부여는, 숫자가 빠진 의사 소통에 대해서는 객관적이지 않고, 비과학적이며,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게 만듭니다. 통계학자인 폴 굿윈의 《숫자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숫자와 관련된 우리의 실수를 짚어줍니다.
숫자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 데이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폴 굿윈 지음. 신솔잎 번역
전반부에서는 숫자가 잘못 쓰이거나 지나치게 강조되어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에 대해 다룹니다. 숫자, 지표, 측정치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이것을 발표하고, 공유하고, 읽고, 해석하고, 의사결정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에서 왜곡과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정말 많은 역사적 에피소드와 현실 사례들이 나옵니다. 후반부에서는 정확하고 정직한 숫자가 제시되어도, 그것을 놓치고, 외면하고, 무시하게 되는 이유와 위험에 대해 다룹니다.
1장에서는 순위에 대해 다룹니다. 입학, 졸업, 입사, 성과 평가, 입찰, 선거, 오디션, 베스트셀러 선정, 올해의 배우 등 우리는 순위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는 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과연 이것을 순위로 매기는 것이 타당한가? 라는 의문이 생기는 경우도 매우 많습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케네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였습니다. 세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대안이 있을 때, 투표권을 가진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선호 순위를 잘 반영하는 투표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특히 여러 가지 지표를 종합한 종합 순위를 매기고, 그것을 정말 중대한 곳에 활용하는 것의 문제점이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 종합 순위 대신에 왜곡의 가능성이 적은 개별 척도(hot indicator)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2장에서는 프록시 지표에 대해 다룹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울 때, 대상의 속성을 반영할 것으로 보이는 간접적인 측정치를 프록시 지표라고 합니다. 프록시 자체의 타당성도 문제이지만, 지표 자체가 목표가 되어 부정적인 결과를 나을 수 있다는 것이 굿하트의 법칙(Goodhart's law)입니다. 폭스바겐은 배기가스 배출 기준이라는 지표만을 만족시키기 위해, 극단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는 부정까지 저지르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프록시 지표로서 오랫동안 확고한 지위를 누려온 국내 총생산(GDP), 지능지수(IQ)에 대한 문제점, 오용된 사례들도 나옵니다.
3장에서는 대표성(representativeness) 문제를 다룹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평균"이라는 대표값은 사실 집단 구성원 누구도 대변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평균값을 근거로 집단의 특성을 간편하게 특징짓고, 유형화(stereotype)하는 것의 위험을 이야기합니다. 2018년에 보았던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전투기 좌석을 설계할 때, 모든 조종사들의 평균 체형을 고려하여 만든 결과, 어떤 조종사에게도 맞지 않은 좌석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쨌든, 복잡하고 다면적이고, 개별적인 개체들을 단 하나의 대표값으로 단순화해서 의사소통할 때에는 항상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평균의 종말
4장에서는 범주화(categorization)와 경계(border, boundary)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논문을 쓸 때, 연구자들은 통계적인 유의 수준(significant level)으로 피셔가 제안한 0.01 또는 0.05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영가설이 참일 때, 이런 실험 결과가 나올 확률은 5%나 1%보다 낮으니, 영가설을 기각한다라는 논리를 사용합니다. 저도 논문 쓸 때, 유의미한 극단적인 확률값이 나오면, "별이 떴다!"라고 하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5%, 1%라는 기준은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임의의 경계선 안에 들어가기 위해 합법적이거나 편법적인 방법으로 데이터를 조작하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89.5로 B 학점을 받은 사람과 90점으로 A학점을 받은 사람은 완전히 다른 범주로 분류되고 큰 차이로 지각되지만, 99점을 받은 사람과 90점으로 A를 받은 사람은 같은 범주로 묶이게 됩니다.
5장에서는 특이하게 라이프트래커, 라이프로깅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마트워치와 같이 24시간 나와 함께 하는 디바이스의 등장으로 나의 많은 신체 활동과 상태를 숫자로 기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숫자들이 나의 다채롭고 복잡한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는 여론 조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론 조사는 원칙적으로 무작위 샘플링을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질문 상황, 답변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염과 왜곡이 생깁니다. 보통은 조사 기관에서 밝히는 오차 범위보다 훨씬 큰 오차 범위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에서는 사소하게 발생할 수 변화에 대해 과도한 서사를 붙여서 여론을 왜곡하거나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언더독 효과, 밴드왜건 효과, 헤딩(herding) 효과 등 여론 조사 결과를 왜곡시킬 수 있는 심리사회적인 기제들도 많습니다.
7장은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행복도, 삶의 질, 고통의 정도 등의 지표에 대해 다룹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부터 후순위에 있는 나라까지 발표되면, 각 나라 정부와 정치인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순위를 해석하고, 정책을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응답자들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는 있었던 것일까요? 순간적인 다른 변수에 의해 응답이 매우 달라질 수도 있는 불안정하고 불분명한 것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대어, 소수 세째 자리로 갈리는 행복도 순위는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오픈AI의 이사진들이 지향했었다는 (피터 싱어의) 효율적 이타주의의 이야기도 잠깐 나옵니다.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과 같은 이타주의를 실행하는 데에 있어서도 정량화된 지표에 기반해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가 큰 곳에 기부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효율성을 타당하게 어떻게 정량화하느냐 문제가 제기됩니다.
8장은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고 있는, 사전 확률에 대한 고려를 이야기합니다. 즉,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 이야기입니다. 검사의 오류(presecutor's fallacy) 이야기를 보니, 잘못된 확률 판단으로 인해 유무죄를 판단하는 형사법정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판결이 나올 수도 있더군요. 코로나19 백신의 효과, 음주 운전자의 식별, 범죄 용의자나 테러리스트의 식별, 거짓말 탐지기의 효과와 같이 매우 민감하고, 치명적인 곳에서 기저 확률을 고려하지 않은 확률 판단에 오류가 생길 경우, 그 여파는 심각할 수 있습니다.
9장에서는 정확한 숫자가 제시되어도 우리의 기존 신념에 반하는 경우, 왜 우리는 그것을 종종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지를 다룹니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사전 확률을 0 또는 1로 놓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어도, 우리의 믿음을 바꿀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교육 수준이 높거나 과학적인 사고를 훈련받은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되어 노벨병(Nobel disease)라고도 불립니다. 또, 역화 효과(backfire effect)는 기존 믿음을 반박하는 사실(예: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없었다!)이 나와도, 기존 믿음이 오히려 더 견고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때로는 집단이 객관적인 정보를 무시하고, 집단 사고(group thinking)에 빠질 경우,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 피그스만 침공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에서 보듯이 극단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부산 엑스포 유치에 대한 과장된 기대와 유치 실패의 원인을 집단사고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10장에서는 과장된 공포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 가지 지표들은 현대 사회가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것은 낮은 확률이지만 극적으로 보이는 비행기 사고, 끔찍한 흉악 범죄들입니다. 공포를 조장해 이득을 보는 세력들과, 부정적인 뉴스에 더 주의를 쏟게 되는 우리의 뇌가 함께 작용하여 세상이 점점 더 험악해지고, 미래는 더 어둡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공포 마케팅은 언론, 기업, 종교, 선동적인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여, 때로는 잘못된 투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정확한 숫자와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메시지가 나오게 된 동기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11장에서는 통계적 사고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의심스런 통계치나 숫자를 대할 때에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판단(시스템 1 사고)과 함께, 느리고 깊게 생각해보는 시스템 2 사고를 병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보가 한결같이 편향되어 있어도, 일관성이 있고, 명쾌하게 일치할 때 우리는 타당하다는 착각(타당성 착각, illusion of validity)에 빠진다고 합니다.
어쩌다보니 책의 내용의 주요 부분을 인용 부호 없이 거의 인용, 요약해버렸습니다. 그만큼 곱씹어보고 싶은 내용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 책은 서점에서 "자연과학", 수학 관련 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숫자가 많이 나오지 않고도 숫자 이야기를 쉽게 전해줍니다. 그리고 사실, 숫자를 만들고, 가공하고, 조작하고, 읽어들이고, 해석하고, 공유하고, 적용하는 인간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옵니다. 그런 면에서 훌륭한 심리학 서적입니다. 2023년을 시작할 때 서강대학교 하영원 교수의《결정하는 뇌》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수많은 의사 결정(decision making)을 해야 하는 우리 인간은, 매우 많은 실수를 하고, 합리적이지 않고, 편향에 휘둘린 결정을 합니다.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숫자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제한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또 드러난 숫자 뒤에 숨겨진 숫자와 의도, 의미를 파악하려고 더 노력하면, 조금은 더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KBS 박종훈 경제 기자가 쓴 《자이언트 임팩트》를 읽어보았습니다. 원래 자이언트 임팩트 또는 테이아 가설로 불리우는 이 용어는, 45억년 전에 지구가 화성만한 크기의 테이아와 충돌하여 달이 탄생했다는 유력한 과학적 가설입니다. 저자는 그것에 견줄만한 세계 경제의 커다란 변화와 충격 4가지를 거론하며,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의한 글로벌 분업 시대, 초저금리 시대,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던 시대, 고성장 시대는 이제 지나간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과거 30~40년의 경제 작동 방식을, 앞으로도 비슷하게 적용하여 예측을 한다면 틀린 예측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자이언트 임팩트. 박종훈 지음.
그 네 가지 자이언트 임팩트는 인플레이션, 금리, 전쟁, 에너지입니다. 경제학적 기본 지식이 없는 저같은 사람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설명해놓았습니다. 책의 내용을 여기에 요약하는 것은 저의 능력 밖의 일이라서, 각 항목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적어봤습니다.
첫 번째는 '인플레이션'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특별히 물가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 장기적인 저물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큰 이유로, 미국이 움켜쥔 세계의 패권에 따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의 원활하게 이루어진 분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갑자기 찾아온 공급망의 문제, 그리고 피부로 느껴지는 고물가에 우리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계속 올리고, 우리 나라는 정부가 물가를 인위적으로라도 잡으려고, 가히 관치 경제라고 할 만큼 깊게 개입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플레이션이 과연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여러 가지 환경의 변화로 이제 더 이상 물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좋던 시절(the good old days)은 다 지난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는 물건의 값인 물가에 이어, 돈의 값인 '금리'가 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이례적으로 저금리 현상이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미국 연준이 빅스텝, 자이언트 스텝이라 불리는 금리 인상을 연속해서 단행하고, 이제 언제 기준 금리를 동결할 것인지가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과거처럼 저금리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높은 저축률에서 비롯되었던 풍부한 자금이 줄어들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금리를 다시 올리는 것을 검토해야 합니다. 게다가 고령화로 인한 자금 시장의 변화,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리스크가 저금리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 뉴스를 볼 때마다, 금리와 다른 경제 변수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저같은 경제학 맹에게는 항상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면, 금리와 채권 가격의 관계 같은 것 말이죠. 어쨌든 그동안 저금리 현상에 잘 적응하여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이용한 과거의 투자 전략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되어간다고 할 수 있겠네요.
세 번째는 바로 전쟁입니다. 미국이라는 원톱 초강대국 체제의 세계 패권이 이제 미국과 중국이라는 투톱으로 바뀌고, 거기에 유럽, 동아시아의 신흥국, 에너지 패권을 쥔 러시아, 중동 나라 등이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직접적인 무력 도발인 전쟁, 또는 패권 전쟁, 공급망 전쟁, 기술 전쟁, 국지 전쟁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말로 침공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었지요. 게다가 그 전쟁이 이렇게 오랫동안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계속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또는 하마스)간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은 당사국 국민들에게는 당연히 말할 수 없는 고통이고, 그 여파는 에너지, 식량, 인플레이션 등으로 전세계에 미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쟁을 대하는 나라들의 이해관계도 단순하지가 않아서, 이제 나라들도 각자도생, 개인들도 각자도생의 시대가 오며, 예측 가능성은 낮아지고, 변동성은 매우 커지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로 언급된 것이지만, 결코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에너지'입니다. 한 때, 원유 고갈에 대한 대안으로 셰일 가스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셰일 가스가 발견되면서 미국은, 중동이나 러시아와 같은 원유 생산국에 대한 의존과 간섭을 줄이려고 했었죠. 그러나, 셰일 가스가 여러 이유로, 미국이 바라는 대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의 역할을 잘 못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독재자라고 비난했던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를 찾아가 원유 생산을 늘려달라고 싹싹 빌었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사우디와 중동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이란은 미국과 핵 합의 복원을 하려고 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전쟁과 핵무기 기술 확보 등의 여러 가지 변수가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유럽은 어떻습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에 크게 의존했던 천연가스 공급이 어려워지자, 겨울 난방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또,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려고 해도, 발전에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은 대부분 중국이 키를 쥐고 있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풍부한 화석 연료 에너지를 활용해서, 고성장을 이룩했던 시대는 또 하나의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불확실성과 변화만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미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시대에 변화를 읽는 거시적인 안목을 갖추고, 거기에 국가, 사회, 개인이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십시오.
거대한 충격 이후의 세계: 알아두면 반드시 무기가 되는 맥락의 경제학. 서영민 지음
이전에는 서영민 기자의 《거대한 충격 이후의 세계》라는 책을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충격 이후 급하게 변화하는 세계 경제를 변화시키는 여러 가지 현상과 요인들, 특히 반도체 문제, 인구와 기후 위기, 빈곤의 문제 등을 포함해 깊게 파헤치는 책이었습니다. 기자란 모름지기 발생하는 "피상적인 사건에 숨겨져 있는 고구마 줄기와도 같은 원인들을 깊게 파헤쳐 분석해주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상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도 같이 보면, 거시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