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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1

마스크에 대한 잡생각

마스크를 쓴 남자


얼마 전에 보험 상품을 팔러 나에게 온 사람이 있었다. 상당히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꾸 가까이에서 마스크를 대충 쓰거나, 내리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는 위협적으로 느껴졌고, 고객을 똥같이 생각한다고 느껴졌다. 물론 그런 사람에게서는 상품을 구매하지 않았다.  

하루 8시간 내외로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이제 이상하지 않은 일상이다. 그런데, 누구는 마스크를 되도록 벗지 않고 종일 답답하게 코와 입을 완전히 가리고 그 상태를 몇 시간씩 유지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수시로 마스크를 내리고, 툭하면 벗어버리고, 아예 대놓고 벗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확률적으로 내가 감염되었을 가능성, 또는 같은 공간을 쓰는 내 옆에 있는 동료가 감염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우리 나라 인구 5천만 중에 하루 5백명씩 신규 감염자가 나온다고 하면 고작 10만명 중 1명 꼴이다. 그런 적은 수의 일일 신규 확진자들 가운데 설마 나는 들어가지 않겠지라는 생각은 한편 아주 합리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드물고 드물지만 만에 하나 내가 감염자인데 마스크를 쓰지 않아 생길 수 있는 주변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답답하고 덥고, 냄새나는 마스크를 하루 종일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람에 대해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에 나만의 휴리스틱이 생겼다. 바로 마스크를 잘 쓰는 사람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다. 마스크는 상대방이 혹시 감염자일 경우 나를 지키는 수단이라기보다, 내가 혹시 감염자일 경우, 상대방을 지키는 수단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마스크를 잘 안 쓰는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지하철, 버스와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적인 사무실, 밥 먹는 식당 등에서 주로 차이가 난다.

나는 마스크를 잘 안 쓰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는구나!
  • 매사에 철저하지 못하구나!
  • 예의가 없구나!
  • 공동체와 규칙을 존중하지 않는구나!
  • 옆에 있는 사람(특히 그 사람이 자기보다 직급, 지위, 사회적인 위치가 낮다고 생각하는 경우)을 무시하는구나!
  • 매사가 대충대충이구나!
  • 본인은 항상 옳고, 틀릴 일이 없고, 깨끗하다는 오만에 빠져 있구나!
  • 모든 안 좋은 일에서 본인은 특수한 예외라는 착각에 빠져 있구나!

반면 고지식하게 마스크를 벗지 않는 사람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 매사에 철저하구나!
  • 공동체와 규범을 존중하는 사람이구나!
  • 다른 일에도 철두철미하겠구나!
  •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옆에 있는 사람을 똑같이 배려하고 존중하는구나!
  • 나도 예외가 아니고, 나도 틀릴 수 있고, 나도 똑같이 감염자일 수 있고, 나도 똑같이 더러울 수 있다는 유연한 생각을 하는구나!
마스크 하나 가지고 너무 많이 나갔나? 그런 것 같긴 하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들 중에 매체에 등장할 때마다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고 인터뷰하고, 발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인이 발표자일 때는 마스크를 벗는 게 발표자에게 주어지는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방역 수칙은 포스터에나 나오는 것이고, 자기는 절대 감염자일 리 없으니, 5인 이상이고 뭐고 가볍게 무시하다 딱 걸린 사람들,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은 사실 매우 위험하다. 사람의 열 가지 속성이 일관성 있게 다 좋고, 다 나쁘고 그렇지 않으니까. 그러나 요즘, 나는 마스크 착용하는 것 하나를 보고, 그 사람에 대한 온갖 추측과 예단이 생기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2021-06-01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신현호 저.

제목이 약간 도발적이다. 너희들은 감으로 이야기하지만 나는 객관적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것인가? 이 책을 집어든 것이 대략 1년 쯤 전이었던 것 같다. 한참 데이터 관련 책들을 모두 읽어보자고 작심하던 때였다. 박형준의 『빅데이터 빅마인드』, 스타벅스의 데이터 과학자 차현나가 쓴 『데이터 읽기의 기술』,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연세대 산업공학과 임춘성 교수가 쓴 『멋진 신세계』,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가 쓴 『증거의 오류』, 한양대 경영대학 장석권 교수가 쓴 『데이터를 철학하다』 , 구글 데이터 과학자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 등을 보았다.

그 중에 증거의 오류와 데이터를 철학하다는 읽다가 너무 지루해서 집어던졌다. 가장 재미있게 본 두 권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와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였다. 전자는 구글의 검색 데이터만 가지고도 많은 사회 현상을 설명/예측할 수 있는 경제학자 출신 데이터 과학자의 통찰이 빛났었다. 후자의 책 역시, 경제학자 출신의 데이터 과학자가 데이터로 설명력을 높여주는 여러 가지 인간 집단의 특성과 사회적인 현상을 바라보는 틀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고 인사이트를 주었던 책은 『빅데이터 빅마인드』, 데이터 과학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하게 알고 싶어 잔뜩 기대했지만 별로 기대에 차지 않았던 책은 『데이터 읽기의 기술』이었다.

경제학자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관심사들이 결국 심리학자들의 관심사와 얼마나 중첩되는지 엿보게 된 것 같다. 세상 일에 관심을 갖는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찰한다. 그 데이터는 결국, 사람들의 행동과 반응을 집합적으로 모은 것이고, 그 안에는 인간 행동의 원리, 심리학의 관찰과 실험 데이터가 들어있다. 마치 데이터라는 다리를 통해, 세상과 인간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도록 여러 학문들이 만난다고나 할까. 

책은 상당히 재미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생각해보자.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온 곳에서는 다음에도 당첨자가 또 나올까? 지금까지 슛을 많이 넣은 농구 선수는 다음 번에  슛을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일까? 투스트라이크 이후에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 확률은 낮아질까? 전염병 예방 백신을 맞고 부작용으로 사망할 확률보다 전염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은데 왜 어떤 사람들은 백신을 안 맞으려고 할까? 유전무죄는 실제 법정에서 판결 결과로 나타날까? 딸을 가진 아빠들은 더 페미니스트 성향을 갖게 될까? 국회의원이나, 이사회에 여성 할당제를 실시하면 능력이 안 되는 여성들이 더 등용될까? 월드컵 기간에는 심장 마비로 인한 사망률이 더 높아질까? 1인1투표를 통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동등한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일까? 왜 백화점/인터넷 할인가는 9,900원과 같은 9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가? 잘 생긴 사람이 선거에서 뽑힐 가능성이 더 높을까? 정부 정책은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을까? 담배세를 얼마나 올려야 국민 건강에 이득이 될까? 중년의 위기는 실존하는가?

이런 여러 가지 재미난 질문들에 대해서, 단순히 주장이나 당위가 아니라, 데이터를 증거로 답을 찾아간다. 그 데이터들은 때로는 통제된 실험실의 데이터이기도 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응답 데이터이기도 하고, 시장이나 주가를 분석한 데이터이기도 하고, 오랜 기간 축적된, 또는 추적하거나, 관찰한 데이터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는 휴리스틱(heuristic, 발견법)이라는 간편하고 훌륭한 의사결정 기제가 있다. 그러나 휴리스틱은 종종 많은 편파와 오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증거와 데이터에 기반해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세상의 다양한 데이터를 어떻게 바라보고, 수집하고, 끌어와야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모범 사례들을 접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2021-05-22

기존 의학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우리 몸이 세계라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글

고려대학교 김승섭 교수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SF작가 김초엽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보건학자이고 전공이 역학(epidemiology)라고 합니다. 역학이 무엇인지는 최근에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으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알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의학이 개인의 몸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공중보건학, 그 중에서 역학은 개인의 몸과 질병을 둘러싼 주변 환경을 좀 더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학문인 것 같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여성들이 왜 오히려 스트레스 수준이 더 올라갔을까요? 적절한 실내 온도는 21도인가요? 이런 질문에서 시작하여, 상시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노출되는 건강의 위협, 혈액형과 인종이라는 가짜 과학이 어떻게 차별과 지배의 도구로 쓰였는지, 담배 회사에서 만든 연기 없는 세상(Smoke-Free World) 재단 이야기 등 정말 흥미롭지만, 아픈 의학과 과학의 역사가 나옵니다. 

오랫동안 사실이나 진실로 믿어졌고, 의심 받지 않았던 인간의 몸을 둘러싼 지식들이 어떻게 잘못 생산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생산되지 않았는지 이야기합니다. 요즘 코로나19 백신의 지적 재산권 면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책에서는 그에 앞서 왜 말라리아와 같이 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질병에 대해 신약 개발이 적게 이루어졌는지 불편한 진실을 말합니다. 중세 서양 의학의 최고 권위자로서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전 받지 않았던 갈레노스 해부학에 대해, 관찰과 데이터와 실험을 통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은 당대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눈으로 보이고, 쉽게 느껴지는 직관에 대해 의심하고, 새로운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에서, 인류는 진보하였고, 과학은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학을 통해 우리가 함부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흑인, 여성, 동양인, 중국인을 구분지어 차별하고 낙인찍는 것이 사실은 근거가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자들도 약을 꾸준히 먹어 체내 바이러스 농도를 일정 수준 미만으로 떨어뜨리면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HIV 감염인들의 자살은 같은 연령 비감염인보다 10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질병에 대한 비과학적인 혐오와 낙인 때문입니다.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들에게도 혹시 치료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자기 관리를 잘 못한 사람, 사이비 종교에 빠져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쉽게 낙인을 찍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 소수자가 됩니다. 토드 로즈 교수의 《평균의 종말》에서 이야기하였죠. 전투기 좌석을 설계하는 데에 "평균적인 체형"에 맞추면 아무도 맞지 않는 좌석이 나온다고.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든 이게 "정상"적이고, "평균"이며, "표준"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고 우리 몸은 여러 측면에서 다르고, 그것이 비난받고 차별받을 이유는 아닙니다.

2021-05-09

과학자가 쓴 과학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문학의 숲 222회 편지를 보고, 읽어보았습니다. 신뢰하는 사람들이 선택하거나 추천한 작품은, 선택을 후회할 가능성이 낮아서...

처음에는 장편 소설인 줄 알고, 첫 번째 작품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 이어 <스펙트럼>으로 들어가면서, 도대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가 한참 고민했었습니다. 전자책으로 볼 때마다 느끼는 문제점이죠. 작품 전체가 잘 안 보이고, 지금 화면에 뜬 페이지의 텍스트가 전부로 보이는 것. 

SF 소설이 현실을 그린 소설과 달리, 현실적인 모순과 제약을 벗어나, 새로운 사고 실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가는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주 정복, 우주 전쟁과 같은 다분히 남성 취향일 것 같은 미래 과학 소설 속에 장애인, 비혼인, 동양인 여성, 사이보그와 같이, 주류가 아닐 것 같은 등장 인물들의 시각으로 미래 세상, 지구를 벗어난 우주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소설집이 제목으로 쓰인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나오는 냉동 수면 기술을 발전시킨 160세가 넘은 노인 과학자가 당연히 "남자"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따라갔는데, 그게 아니어서 당황했었습니다. 그만큼 아직도 전형적으로 과학, 공학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긴 과학자라면, 그리고, 그 사람이 나이 많은 노인으로 나온다면, 당연히 흰 수염이 있는 할아버지일 것이라는 고착화된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과학 기술이 발전하여, 인간이 외계 행성에 갈 수 있고, 인간의 특성들이 "개량"되어 완벽에 가까워지고, 감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고, 죽은 사람의 뇌를 시뮬레이션하여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요? 그런 세상에서 "완벽"하지 않은,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이 없어서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게 될까요? 김초엽의 흥미있는 우주 탐험, 뇌 탐험 작품들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프로젝트 관리와 간트 차트

간트 차트 예시: 영화 제작 프로젝트
간트 차트 예시: 영화 제작 프로젝트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프로젝트 관리를 하면서 소위 간트 차트(Gantt Chart)가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한 것을 본 적이 없다. 20세기 초에 건설 프로젝트처럼 터 닦고, 벽 세우고, 지붕 올리는 순서로 작업들이 종속적이고, 순서가 정해지고 별로 변하지 않는 경우는 어느 정도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사무직/지식 근로자들이 하는 업무가 어디 그런가?

간트 차트의 시각적인 문제점 중에 하나는, 한 행에 하나의 태스크와 하나의 막대(bar)만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엄청나게 많은 공간(가로 시간축으로도, 세로 작업 목록축으로도!)  또는 종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간트 차트가 원래 의도대로 한 눈에 프로젝트 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


일반 사무직들은 아직도 파워포인트로 간트 차트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 보고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데, 간트 차트의 결정적인 약점(?)을 알아서 잘 보완(?)하는 것을 봤다. 즉, 대충 한 행의 타임라인에 여러 개의 후속 과제 또는 하위 과제 막대를 연속해서 표현해서 오히려 알아보기 쉽게 하는 것이다.

나는 간트 차트로 표현되는 전통적인 프로젝트 관리 방법이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가 
  1. 내가 일했던 회사들이 한국적인/동양적인 정서가 강해서, 명시적인 프로젝트 일정과 계획의 이면에 암묵적으로 "유연성"에 대한 동의가 있어서인지  [회사/조직 특성]
  2. 아니면, 내가 일했던 업무가 소프트웨어 제작이나, 공학적 개발과 달리, 비교적 손에 잡히도록 구체화하기 힘든 소프트한(?) 업무여서 그런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업무 특성]

소위 크리티컬 패스(critical path), 또는 크리티컬 패스 방법론(critical path method)을 정교하게 적용해서 프로젝트 일정을 예측한다는 것도, 사실 프로젝트 초기에 디자인 단계에서 하는 대부분의 어림치나 추측(guessing)이 맞다는 가정 하에 작동하는 것이지만, 그것도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어디 현실에서 하나의 작업이 깔끔하게 끝나서 다시 뒤돌아볼 필요 없이 다음 작업이 시작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계속 반복하고, 검증하고, 돌아가고, 피드백 받고, 보완하고, 그것에 따라 다음 작업이 바뀌고, 건너뛰고, 목표가 바뀌고, 예측하지 못한 혁신도 일어나고, 돌발 사고도 생기기 마련인데... 과연 간트 차트가 그런 것들을 관리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일까?

간트 차트를 쉽게 생성해준다는 Wrike의 광고를 보고 문득 든 생각이었다.

2021-04-25

가짜 뉴스의 심리학

 

가짜 뉴스의 심리학: 결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 또한 믿기 쉬운 (박준석 지음)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극단적인 진영간의 대립은 전례없이 심화되었다. 그리고 그런 진영의 대립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가짜 뉴스를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은 왜 간단한 팩트 체크도 하지 않고, 가짜 뉴스에 빠져드는 것일까? 지능이나 지식이나 판단력이 부족해서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런 위험성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에서, 적나라하게, 심리학과 데이터 과학에 기반하여 보여준다.

가장 널리 알려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 부합하는 정보만 걸러서 처리하는 것인데, 소셜 미디어의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을 통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그런 편향이 더 강해지는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그 외에도 인간이 지닌 여러 가지 한계가 언급된다. 인지적 자원을 쓰기 싫어하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성향, 다니엘 카네만이 말했던 시스템 1과 시스템 2 사고 경로, 기계 학습에서 말하는 과적합(overfitting)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음모론, 동기화된 논증(motivated reasoning),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 수면자 효과(sleeper effect), 거짓 진실 효과(illusory truth effect),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에 나오는 사전/기저 확률을 무시한 판단 등등등. 이제는 꽤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가장 점수가 높았다던 MIT 학생들도 100점 만점에 73점의 점수밖에 획득하지 못했다는 CRT 문제(cognitive reflection test)를 주위 친구들에게도 던져보고 싶다. 깊이있는 사고를 하지 않고, 소위 말하는 것 필링(gut feeling, 직감?)으로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지... 

책에서 나온 4·15 부정선거 음모론의 백미는 동기와 정서가 강력하게 작용하였을 때, 소위 말하는 전문가 또는 유사 전문가들도 가짜 뉴스 생산에 일조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선거에서의 지역별 득표율을 마치 주사위를 여러 번 던지는 독립 사건처럼 취급하여, 2의 424승분의 1의 확률로 발생 가능성이 극히 낮은 일이 발생했다는 물리학자의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비슷한 논리의 부정 선거 음모론은 진보 진영에서도 일어났다. 지금까지 일어난 과거의 현상을 설명하는 모형을 만들 때에, 현실에 없는 전제를 너무 많이 깔고, 복잡하게 튜닝하는 것이 오히려 설명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미래에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비현실적인 전제에 기반한 음모론, 결국에는 가짜 뉴스가 될 수 있다는 것! 지식 수준이 높은 사람들도 이런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저자는 말미에 전문가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미국에서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 소장이 코로나 음모론과 백신 음모론으로 어처구니 없는 공격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전문성 또는 전문가에 대한 신뢰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전문가의 권위를 절대화하여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여 생기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도 있었다. 내 생각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1990년대 일인데, 손으로 책을 읽는다는 초능력 소녀에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속아넘어가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겠다고 달려들었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고, 그것의 절정은 세브란스 병원 의사들이 그 소녀의 뇌파를 측정하면서 실제 책을 읽을 때의 뇌파와 동일하게 나온다며 놀라워하던 일이었다. 두 번째는, 황우석 사건이 발생했던 초기에,국보급 과학자였던 황우석에게 내가 감히 어떻게 도전하느냐며 그를 옹호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국가적인 이익을 앞세워 황우석을 추종하는 경향이었다. 

누구나 가짜 뉴스에 속아넘어가고, 진영 논리와 편향,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나는 특히 사람에 대해 판단할 때 조심, 또 조심한다. 회사에서는 인사 평가라는 그럴듯한 제도를 핑계삼아 사람을 끊임없이 평가한다. 그런 평가는 인간의 모든 오류와 편파가 들어갈 구석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초기에 저평가했던 사람이 나중에 알고 보니 보석같은 존재였던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최대한 유보한다. 특히나, 평가나 판단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그것이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신뢰하거나, 전적으로 의심하는 양 극단을 조심하면서, 그 사람을 섣불리 좋은 사람, 또는 못 믿을 사람으로 낙인찍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 수록, 사람에 대한 판단의 영향력과 댓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와 검찰 개혁,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 속에서 동일한 사건과 사안에 대해 극단적으로 다른 시각이 충돌하였다. 나의 소셜 미디어 친구들은 나와 유사한 진영에 속해있고, 비슷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기존 진보 진영에서 이 사안을 계기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양 극단의 시각이 첨예하게 싸우다보니, 쉽게 내 편과 네 편으로만 편가르기가 되고, 당신의 의견은 내 편이냐, 아니냐로만 단순화되는 것이 참 안타까웠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진실 앞에 겸손해야 함을 느낀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릴 수 있고, 나도 인간의 편향과 오류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으며, 새로운 사실 앞에 나의 믿음을 바꿀 수 있고, 진실은 아직 모른다는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2021-04-10

고스트 인 러브

고스트 인 러브 책표지
고스트 인 러브 책표지

나는 영화 『사랑과 영혼』을 보지 못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0년 말에 개봉되어, 엄청난 흥행 실적을 낸 영화인데, 서울에 유학온 나는 대학 시절 '영화관'이란 걸 가보지 못했다. 서울에 와서 초기에 두 가지가 낯설었다. 하나는 지하철이라는 서울에만 있는 교통 수단! 다른 하나는 좌석 예약을 해야 한다는 영화관! 그런 저런 핑계와 그 당시 시대의 분위기 때문인지, 아무튼 영화라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래도 라디오에서 하도 많이 나온 음악 언체인드 멜로디는 많이 들어봤던 것 같다.

프랑스의 대중 소설가 마르크 레비의 『고스트 인 러브』를 전자책으로 고르면서, 혹시 비슷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또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고스트가 되어서야 만나게 되는, 어쩌면 뻔하고 진부한 그런 이야기! 이렇게 짐작을 했지만, 그런 뻔한 사랑 이야기를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리고 영미권이나 미국, 캐나다가 아닌 유럽, 프랑스 작가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했다.

주인공 토마는 피아니스트이다. 작품에서 몇 개의 피아노곡이 나온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너무나 유명한 곡이고, 슈베르트의 즉흥곡도 1번부터 4번까지 모두 언급된다. 빡빡한 연주 스케쥴에 묻혀 사는 피아니스트의 삶의 단편을 조금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연주자들이 실은, 밥먹는 시간 빼고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을 하는 모습은 전혀 나오지 않아서 좀 의아했다. 

주인공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은 아버지의 유령!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다루려나? 싶더니, 아버지의 엉뚱한 요구는 아버지가 못 다한 사랑(그것도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을 살아있는 아들에게 이룰 수 있게 부탁하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 살고, 빡빡한 연주 스케쥴에 묻힌 피아니스트 아들은 아버지의 엉뚱한 부탁으로 며칠 내로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급박하면서도 리듬감있게 진행된다.

내가 재미있게 보았던 점은 바로 유럽식 대화이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대화, 어머니와 아들과의 대화, 그리고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간의 대화이다. 전에 보았던 일본 소설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화 방식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장황하지만, 유머가 있고, 외교적인 것 같으면서도 직설적인 대화!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어서, 원래 원작자가 쓴 말의 뉘앙스를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겠지만, 번역이 매끄러워, 우리말 같으면서도 유럽식 리듬감과 정서가 느껴지는 대화를 엿보는 것이 참 즐거웠다. 

자식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가 사랑했던 그녀를 자식은 어떻게 보게 되는가?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그녀의 가족들은? 이런 미묘한 사람들간의 만남과 관계 맺음, 거기에서 오는 섬세한 감정들에 같이 동화되기도 하고, 안타까움과 환호를 같이 느끼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나서 마르크 레비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아뿔싸! 작년엔가 읽었던 『그녀, 클로이』도 레비의 작품이었다. 뉴욕 맨하탄의 오래된 고급 아파트와 거기에 사는 다양한 캐릭터들과 주변 풍경이 살아 움직이듯 묘사가 되어 있어서 나는 당연히 미국 작가의 글이라고 생각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