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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1

그래도 펌/펌질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

펌로그는 무조건 잘못된 것이다?라는 재미있는 글을 읽고서 새삼 다시 한 번 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우리 나라에 유독 많은 것이 바로 펌, 또는 펌질, 또는 스크랩이라고 불리면서 원본 글을 복사해다가 자신의 페이지에 붙이는 행위입니다. 이에 대해 쿠키님은 원본 글을 쓴 사람이 영구적이고 안정적인 소스로서 글이 가치를 갖도록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셨고, rantro님은 펌로그를 만드는 사람이 관련글을 찾아서 한 곳에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제 2의 창작이라 할만큼 가치있는 일이라는 의견을 내셨습니다. 그리고 주된 논쟁은 저작권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분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그래도 펌 행위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입니다. 예전에는 저 개인도 펌질을 별 생각없이 했었지만 요즘에는 웬만하면 원본에 링크를 걸고 있습니다.

논쟁에서도 나왔지만, 인터넷에서 자기가 원하는 목표에 가장 근접하는 정보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검색 엔진의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아직 웹에 있는 정보들이 논리적으로 잘 정리되어 쌓여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즉, 아직까지 웹에 있는 정보들은 쓰레기의 바다라는 것이고, 그런 쓰레기 속에서도 비교적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와 최대한 유사한 정보를 제시해주는 엄청난 기술을 제공하는 곳이 바로 구글과 야후와 같은 검색 엔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런 검색 엔진이 도대체 그 정보, 또는 문서가 가장 적합할 것이라고 어떻게 판단을 할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기술과 기법들을 사용하겠지만 단순화해서 생각해보면 아마 다음과 같은 것들도 포함될 것입니다.


  • 제목이 적절한 것
  • 제목이 불분명하다면 내용이 적절한 것
  • 다른 곳에서 해당 문서로 링크가 많이 걸린 것
  • 해당 문서의 조회수가 높은 것
  • 해당 문서에 사용자들의 답변과 의견이 많이 올라온 것

원본 문서가 가치있는 문서라면, 그것은 다른 곳에서 많이 링크가 걸릴 것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것입니다. 즉, 더 많은 링크가 걸리거나 더 조회수가 많은 문서일수록 해당 문서는 우리가 찾고자 하는 적합한 문서이거나 또는 가치있는 문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문서의 제목, 내용, 키워드 같은 것들은 기계도 이해할 수 있을만한 정해진 규칙이 아직까지 없고 사용자가 마음대로 작성할 수 있게 되어있어서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신뢰성을 부분적으로 메꾸어주는 것이 바로 외부 문서에서 해당 문서로 걸린 링크의 수, 조회수와 같은 다른 사용자들의 참여도와 인기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키워드로 인터넷을 검색했을 때에 다른 문서보다 상위에 노출되었다면 아마도 제목, 내용, 링크의 수, 인기도, 조회수 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하다고 기계가 판단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원본 문서에 링크를 걸지 않고 그냥 내용을 복사해다가 새로운 사이트에 문서를 만들면, 원본 문서에 축적될 수 있는 가중치는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즉, 검색을 했을 때에 그 원본 문서가 정말 정확한 내용을 담은 문서라면 최상위에 노출될 것인데, 복사본이 여기 저기에 있기 때문에 원본 문서의 링크수와 조회수는 떨어지게 되고, 검색 엔진은 원본 문서의 정확성이나 신뢰성을 실제보다 더 낮게 판단하게 됩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특정한 검색 요청에 대해 원하는 문서가 아닌 다른 엉뚱한 문서를 결과로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원본 문서가 약간의 모양만 달리 해서 여기 저기 여러 군데에 있다 보니 검색 결과는 상당히 여러 개가 나왔는데 다 똑같은 내용을 펌질을 통해 복사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검색의 적합성과 정확성, 그리고 신속성이 펌질로 인해 계속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인기있는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면, 네이버 지식인, 네이버 블로그라는 것들이 주로 이런 펌질로 이루어지다보니 똑같은 문서인데도 제목만 살짝 다르게 되어 마치 여러 개의 검색 결과인 것처럼 노출이 됩니다. 그래서 혹시나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나 하고 여러 검색 결과를 눌러봐도 사실은 똑같은 내용의 중복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이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결론적으로 아직까지 완벽하지 않은 인터넷 세계에서 외부에서의 링크수와 문서의 조회수는 그 문서의 중요성과 적합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인데, 펌질을 해버리면 그런 기준들이 엉망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안그래도 어지러운 인터넷 세상에서 펌질로 인해 똑같은 글이 여기저기 난무하게 되면 목적에 부합한 원하는 문서를 찾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2006-06-08

자전거를 사다.

알톤 엘가토 점프 16 자전거 펼친 모습 | 알톤 엘가토 점프 16 자전거 접은 모습

오래 전부터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가 10만원대 초반 가격대에서 크기가 작고, 가볍고, 보관이 편하고, 접을 수 있고, 안장이 편한 것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많이 뒤져보았다. 처음에는 자전거에 대한 상식이 없어서 설명을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결정한 제품이 알톤스포츠에서 나온 알톤 엘가토 16 점프이다. 여러 가지 할인 혜택과 쿠폰을 총동원하여 최고 소비자가가 225,000원까지 하는 제품인데 107,980원에 구입했다! 택배 아저씨가 낮에 배달을 해서 관리실에 맡겨달라고 하고, 저녁 늦게야 자전거를 볼 수 있었다. 처음 조립할 때 약간 헤매긴 했지만 기능은 대만족이다. 파란색 작은 바퀴도 아주 예쁘고, 스프링 안장에 앞뒤 쇼바가 있어서 승차감도 참 좋다. 그러나 접어서 지하철 타기에는 덩치가 만만치 않고, 접힌 상태에서 운반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그 점은 다른 자전거도 비슷할 것이다.

2006-06-06

W3C의 semantic data extractor

오래간만에 페이지의 문법 검사(markup validation check)를 하다가 tip으로 semantic data extractor(시맨틱/의미적 데이터 추출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인데 왜 아직까지 몰랐을까 생각이 들었다. HTML 페이지의 주소를 입력하면 페이지의 각종 메타 데이터(제목, 저자, 요약, 연락처, 저작권, 언어, HTML Profile 등), 관계된 자원(도움말, 다음/이전 문서 등 관계된 다른 페이지, 다른 언어 페이지, RSS 피드용 페이지, 북마크가 가능한 링크 등), 정의된 용어들, 인용된 부분, 그리고 페이지의 논리적 구조 등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많은 데이터들이 제대로 추출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페이지가 의미적으로 잘 만들어졌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검색 엔진에 제대로 노출된 확률이 크고, 기계적인 처리가 용이하다는 뜻이며, 나아가 의미적인 요소에 크게 의존하는 장애인용 보조 기술을 써서도 페이지를 잘 볼 수 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웹 접근성 쪽 관계자들과 가끔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접근성 기술 지침에 나온 문자 그대로의 내용에 매달린 나머지, 진짜 중요한 의미 위주의 코딩(semantic markup)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장애인의 접근성과 향후 웹의 내용이 제대로 된 데이터가 되어 기계적인 처리가 원활하게 되는 것은 거의 동격이라고 해도 될 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에 W3C의 semantic data extractor 말고도 문서의 의미와 논리적인 구조가 제대로 작성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가 더 있다. 예를 들면, 오페라와 모질라, 아마야 브라우저에서는 link rel을 분석해서 표시해주거나 아예 문서의 구조적인 요소(element)들만 따로 추출해서 보여주는 기능이 있고, 파이어폭스용 확장 중에 웹 개발자용 도구모음(web developer toolbar)이나, 익스플로러용으로 나온 웹 접근성 도구모음(web accessibility toolbar)에서도 문서의 구조적인 정보를 정리해서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semantic data extractor가 보여주는 내용은 이들과는 달리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상당히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툴(tool)들이 많이 퍼졌으면 좋겠다.

2006-06-05

웹 디자인할 때 10가지 나쁜 습관

스위스의 웹 디자인 잡지인 CAP&Design 2006년 4월호에 실렸고, 456 Berea Street에서 요약한 웹 디자인할 때 10가지 아주 나쁜 습관(Ten deadly sins of web design)이라는 기사에 나온 10가지 사항을 인용해본다. 특히 우리 나라의 웹 환경에서 디자이너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각 항목에 대한 설명은 온라인 기사에서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넘겨 짚은 개인 의견이다.



Not following basic typographic rules (기본적인 글꼴 사용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

흔히 발견되는 문제는 아마도 글꼴을 pt나 px 등의 단위를 써서 고정된 크기로 디자인하는 것, 그리고 serif, sans-serif, monospace 등 generic font를 명시하지 않고 그냥 굴림 등 특정한 시스템에서만 나오는 글꼴만 지정하는 것, 가변폭을 써야 할 곳에 고정폭 글꼴을 쓰거나 그 반대의 경우, 지나치게 많은 글꼴을 쓰는 경우, 텍스트로 표현 가능한 내용을 쓸데없이 그래픽으로 그려 넣는 경우 등이 아닐까 싶다.

Being too creative with navigation (지나치게 독특한 네비게이션 방법을 사용하는 것)

우리 나라 사이트들의 정말 심각한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메뉴를 무조건 플래시로 만들어야 고급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에 플래시의 접근성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지막지한 마우스 포인팅 훈련을 시키는 메뉴들. 최근에 나이드신 아버지에게 컴퓨터를 가르쳐드리면서 다시 깨달았다. 마우스의 정확한 포인팅이 초보자들에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마우스 포인팅 훈련을 강요하는 춤추는 플래시 메뉴를 나는 정말 싫어한다. 게다가 플래시 메뉴의 일관성도 없다. HTML의 하이퍼링크의 동작에 대해서는 비교적 예측이 가능하지만 플래시는 제작자가 마음대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동작하는지 매 사이트마다 예측하기 어렵다.

Creating a cluttered navigation system (혼란스러운 네비게이션 체제를 만드는 것)

네비게이션이 무지하게 복잡한 경우이다. 나는 이러닝 콘텐츠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본다. 이렇게 사용성을 고려하지 않은 콘텐츠에 대해서 학습자들은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는 것과, 다음 절로 넘어가는 것,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을 항상 헷깔려한다.

Making sure the site requires certain technology to work (특별한 기술을 써야지만 사이트가 작동하도록 하는 것)

우리 나라엔 워낙 독특한 사이트들이 많아서 두 말한 필요가 없다. 특히 문제되는 것들은 공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정부 산하 기관, 은행, 대학, 사이버대학, 그리고 심지어 접근성을 고려해서 따로 만든 시각 장애인용 전용 페이지들이 모조리 Active X 깔라고 협박하는 현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Thinking that accessibility is only about blind people (접근성은 시각 장애인만 고려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가장 극적으로 접근성의 문제가 드러나는 장애인이 시각 장애인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시각 장애인용 페이지를 요상하게 따로 만들어놓고, 땡이다라고 버티는 정부 사이트들은 정말 문제이다. 뇌병변 장애인, 청각 장애인, 외국인, 컴퓨터를 잘 모르는 초심자, 노인, 저속 사용자 등 고려해야 할 계층은 많다. 따라서 시각 장애인용 사이트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모두가 쉽게 볼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어야지.

Ignoring web standards (웹 표준을 지키지 않는 것)

다행히 최근에 웹 표준을 지킨 또는 지키려는 사이트가 소수이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중적인 사이트들은 아직 한참 갈길이 멀다. 아직도 웹 표준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더 심각한 것은 이상한 reference들이 표준인 것처럼 둔갑해 돌아다니고 그것이 코드 베끼기로 여기저기 퍼진다는 것이다.

Not keeping search engines in mind from the start (처음에 검색 엔진을 염두해두지 않고 제작하는 것)

화려한 사이트일 수록 기초 공사가 부실한 경우를 많이 봤다. 사이트 전체를 온통 프레임으로 만들어놔서 검색 엔진이 세부 페이지를 검색하지 못하거나 검색해도 소용없게 만드는 행위가 가장 많다. 두 번째는 기초중에 기초인 페이지 제목을 엉망으로 달아놓은 경우, 또는 엽기적으로 페이지 제목 부분에 자바스크립트를 써서 제목이 계속 바뀌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세 번째는 페이지 내부 구조, 또는 여러 페이지들 사이의 구조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경우이다.

Basing the site structure on your organisation structure (회사의 조직도에 따라 사이트의 구조를 만드는 것)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공급자의 입장에서 사이트를 논리적으로 구성해놓은 경우,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Using grey text on grey background (회색 배경에 회색 텍스트를 사용하는 것)

이것 의외로 심각한 문제이다. 최근에 개정된 Web Content Accessibility 2.0 Working Draft에도 텍스트의 색 대비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이 되어있다. 웹 접근성을 고려한다고 하는 개발자들도 색상 대비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을 뿐 아니라, 색상 대비가 높은 것은 디자인이 촌스럽다며 일부러 흔히 말하는 파스텔톤의 흐릿한 텍스트를 본문 글꼴로 삼는 경우가 아주 많다. 약시자나 노인들은 글꼴 크기와 색상 대비에 매우 민감하다.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시스템의 사이트를 화면 캡쳐해서 이러닝 과정으로 제작하거나 매뉴얼을 만드려다 보니 화면이 흐리게 나와서 상당히 애먹은 적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luminosity의 대비를 측정해주는 사이트에서 최소한 5:1 이상의 대비가 나오게 하라고 되어있다. 또 한 가지 기술적으로 주의할 것은 글꼴의 전경색을 지정했으면 반드시 배경색도 지정해주어야 약시자들이 글꼴색만 바꾸더라도 글을 못 읽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Skipping the feasibility study (타당성 조사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

학습 과정을 만들 때에는 보통 학습자 요구 분석이라는 것을 한다. 아마 웹 사이트를 제작할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 고객층이 누구이고,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이고,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만족시켜줄 지, 현실적으로 가능한 서비스인지 점검해보고, 제작에 반영해야 한다. 기사 원본이 없어서 어떤 내용으로 이 항목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것은 이러닝 서비스에서 항상 성인 학습자들이 원하지도 않거나, 거의 참여하지도 않을 과도한 배경 이야기와 어설픈 상호 작용, 유치한 애니메이션과 스토리가 우리 나라 콘텐츠에 너무 많다는 것이다. 바쁜 성인들(또는 직장인들)에게 이런 콘텐츠들이 짜증만 더해주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2006-05-31

근거 없는 믿음

택시 운전사. 글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요.

오늘 택시를 타고 용인에 갈 일이 있었다. 가는 길과 오는 길에 택시를 타면서, 그리고 용인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왜 현 정부가 그렇게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는지 알 것 같았다. 아주 인상좋은 택시 기사님께서 그러셨다. 내가 엘지전자 다닌다고 하니까, 왜 정부가 기업이 열심히 일하도록 해줘야하는데 잘 나가는 대기업들에게 시비를 걸어 정권마다 하나씩 죽이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죽이는 이유가 정치 자금을 주지 않으니까 괘씸해서 죽이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런 류의 근거 없는 잘못된 믿음에 기반한 이야기는 오늘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듣게 되었다. 대우가 망한 이유가 김우중 회장이 너무 나대니까 전직 대통령의 눈밖에 나서 해외의 자금줄을 정부가 다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우가 망한 것이고, 김우중은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고 너무도 당당하게 이야기하였다. 또 국가적으로 밀어줘도 시원찮을 잘 나가는 황우석에게 민주노동당이 앞장서서 시비를 걸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밉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 나라에는 군사 독재 시절 언론의 자유가 전혀 없을 때에 언론은 정권이 선전하는 말만 받아적어왔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공식화되어 유포된 담론과 그 이면에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실이라고 믿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광주에서 공산당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공식 발표와 광주 사람들이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5.18 당시, 시민을 지켜야 하는 군대가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던 광주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공식적으로 회자되는 이야기 이면에는 분명히 무언가 보이지 않는 음모와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믿도록 훈련받아왔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의 정부는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서 국민이 직접 선택한 정부이다.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점점 더 사회는 투명해지고, 부분적으로 민주화되어간다. 과거에 정부의 눈치를 보며 정치 헌금을 갖다 바쳤던 재벌 기업들도 이제는 투명해져가는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하고 구린내나는 방법으로 비즈니스를 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시기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런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과거의 구습을 고집하다가 대우, 현대 자동차, 그리고 황우석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누가 더 큰 권력을 쥐고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 대우, 현대, 황우석이었지 결코 검찰, 대통령이 아니었다. 과거에 화려한 경력을 가졌거나 아직도 화려해보이는 한국 사회의 권력과 우상들에 감추어진 비리와 부정, 허구가 이제 무너지면서 우리 사회는 투명하고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재 정권의 음모와 조작에 의한 것이라는 황당무개한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현재 집권당이 국민들에게 그렇게도 인기가 없는 이유가 고작 이런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는가? 물론 집권당은 국민들이 탄핵 정국 이후에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줬지만 개혁 열망을 저버리고 국가 보안법 폐지도 흐지부지하고, 사학법도 한나라당과 야합하려 들고, 부동산 투기도 잡지 못했고, 비정규직 문제도 더 악화시켰고, 미국과의 자유무역지역(FTA) 협정에서도 죽을 써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열광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지금까지 우리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고 굳건히 믿었던 우상들이 무너지면서 그 우상을 무너뜨린 주범 내지 배후 조종자가 현 정부이기 때문에 현 정부는 공공의 적이라는 것이다.

내일이면 지방 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날이다. 나는 어차피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을 찍을 일은 없지만, 끊이지 않는 부정 부패, 살육과 고문, 군부 쿠데타, 국민 탄압의 과거 경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데다 진정으로 반성하고 회개하지 않은 한나라당이 국민들에게 대안으로 선택되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그런 선택의 배후에 근거없는 "유비" 통신에 의한 추측과 본능적인 거부감이 자리잡고 있다면...

2006-05-30

악성 게시물에 당하다.

홈페이지 첫 페이지(http://gregshin.pe.kr)에 누군가 악성 게시물을 올려놓아서 홈페이지가 비아그라 비슷한 성인 약 광고로 자동 전환된 채로 얼마간 방치되었다. 이런... 처음엔 메타 리디렉션을 썼나 하고 브라우저의 메타 리디렉션 기능을 꺼도 계속 페이지가 약 광고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혹시 index 페이지를 해킹했나 하고, 인덱스 소스를 살펴봤는데 아무런 내용을 발견할 수 없었다. 문제는 게시물에 html 마크업 사용을 그냥 허용해놓은 것이었는데 이것을 악용해서 embed 요소를 이용해 광고 페이지를 불러오고 있었다. 아주 옛날 글에 대해 답글 형식으로 올린 것으로 봐서, 기계가 올린 것은 아닌 듯 하고 사람이 올린 것 같다. 최근에 올라온 글이 항상 첫 페이지에 뜬다는 점과 html이 허용된다는 점, 아무나 글을 올릴 수 있게 게시판을 개방했다는 점을 악용해 이런 나쁜 짓을 하다니... 이런 XX같으니라고...

블로그로 옮기고 나서 게시판에 글 쓸 일이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막아놓지 않았는데, 일단 html 사용을 부분적으로 막았다. 그래도 악성 광고가 올라오면 아예 html 사용을 전면적으로 막아버리고, 그래도 대책이 안 서면, 로그인 사용자만 쓸 수 있게 막아버려야겠다. 흑흑... 비록 손님은 적어도 최대한 열어놓고 아무나 들어와서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기본 운영 방침이었는데... 슬프게도 이런 일이 왜 자꾸 생기는 것일까?

호로비츠를 위하여

호로비츠를 위하여 영화 포스터: 엄정화가 연필을 쥐고 피아노를 가르치는 장면이 진짜 피아노 선생님 같다.

퇴근 후 혼자 오산 시네웰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 다빈치 코드나 미션 임파서블과 같은 영화도 있었지만 피아노 영화라는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보고 싶었다. 평일이고 별로 흥행하지 못한 영화인데다 작은 도시의 극장이어서인지 영화관엔 채 10명도 안 되는 관객들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주 한적하고 여유있게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다. 변두리 피아노 학원 선생님인 지수는 유학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컴플렉스를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부모를 잃고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경민이가 나타난다. 지수는 경민이 음악에 대해 숨은 재능을 가진 소년임을 알고 자신의 처지를 바꾸어줄 구세주가 나타난 것으로 기대하고 그를 가르친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귀에 익은 많은 곡들이 나온다. 한 때에는 음악도를 꿈꾸며 피아노를 배우면서 기쁘고, 힘들고, 좌절하고, 지겹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영화 장면과 겹쳐서 지나갔다.

산수국민학교 뒤쪽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수도 피아노'와 '삼익 피아노', '영창 피아노' 소리가 참 많이 다르다고 느꼈다. 수도 피아노의 웬지 서민적인 소리와 삼익 피아노의 조금은 절제된 저음부 위주의 소리보다 고음이 맑은 영창 피아노 소리를 개인적으로 좋아했었다. 그리고 왜 그 당시 피아노 선생님은 "도레미파"를 "도레미화"라고 발음했는지 궁금했었다. 예외없이 바이엘, 체르니로 이어지는 따분한 피아노 레슨보다는 광고 음악이나 만화 음악, 그리고 TV와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온갖 종류의 음악을 흉내내고 변형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또래의 남자 아이들보다 오랬동안 피아노를 배웠던 것 같다.

음악을 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다 지수와 같은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누구는 유학 갔다 와서 콩쿠르 심사 위원이 되고, 누구는 콩쿠르 나가는 아이의 동네 피아노 선생님이 된다. 그러나 부모를 잃고 세상과 벽을 쌓은 경민의 컴플렉스와 상처는 콩쿠르에 나가서 멋지게 자신의 인생을 빛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피아노 선생님 지수의 기대를 보기좋게 무너뜨린다. 그리고 찾아오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경민은 갈 곳이 없어지고, 그런 경민을 지수가 키우면서 처음에는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었지만, 음악과 피아노를 매개로 둘은 진정한 친구가 된다.

어쩌면 뻔한 결말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몇 번씩이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언제나 큰 소리로 웃으면서 자신의 수줍음을 드러내는 피자 가게 아저씨도 참 매력적이고, 철없는 피아노 선생님 엄정화도 매력적이다. 영화에서도 나왔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음악에서 재능과 환경과 운이 따라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부러움은 참 크다. 그리고 다른 분야와 달리 그런 부러움은 성공한 현 상태에 대한 부러움이라기보다 성공하지 못한 요인이 자신의 재능 부족일 것이라는 내적 귀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대미를 장식하고, 음악 자체가 주는 힘과 영화의 스토리가 축적해놓은 벅찬 느낌이 한꺼번에 밀려와 넋을 잃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본 가슴 따뜻한 영화, 주위에 권하고 싶다.